T 평화와 선
원래 ‘촌지(寸志)’라 함은,「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주는 작은 선물(돈)」의 뜻이 담겨있는 좋은 말이지만,
오늘에 와서는 뇌물의 성격에 가까운 부정적인 의미로 희석되어 쓰여지는 감이 없지 않지요.
그런데도 느닷없이 저의 뇌리에 '촌지'라는 단어가 떠올라,
‘기부(寄附:Donation)’의 뜻에 더 가까운...
이에 관련된 제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촌지 이야기를 해 봅니다.
* * *
예전(1984∼85년도) 산청 성심원 나환우 마을에서 잠깐 지낼 때였습니다.
어느 방문 교우의 표현에 의하면, "바람이 좀 심하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수사님!"-
한마디로 자그마하니 호리호리 여리여리하게 보인 젊음 수도자에게라 그런 말을 건넸던 거지요.
그 마을의 환우들 중에 머리가 하얗고 눈이 항상 토깽이처럼 빨간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어쩌다 저를 만나시면 안스러우신 표정으로 "잘 잡수셔야 하는 데...!!! 맛난 거라도 사드셔요." 하시며,
꼬깃꼬깃 주머니에서 뭘 꺼내어 주셨으니 다름아닌 1만원 짜리 지폐 한 장이었습니다.
또 아일랜드에서(1986년) ‘아스칼(Oscal)’ 신부님과 함께 시골 여행을 했을 때였습니다.
신부님이 계셨던 본당 마을을 들러 어느 구멍가계엘 들렀답니다.
마침 그 고장의 성지가 담긴 카드가 보여 몇 장을 골라 사려고 했더니,
카드 값을 받으시기는커녕 구멍가계 주인 할머니는 오히려 주머니에 용돈이라시며 궂이 찔러주시는 겁니다.
하루는 한 카푸친 형제가 아는 집에 장례가 생겨 장시간 둘이 수도원을 나섰지요.
도중에 그 형제가 잘 아는 은인 집엘 인사차 들렀습니다.
엄마와 함께 올망졸망 어린애들이 줄줄이 있어 그 모습이 꽤나 가난한 집이었건만
제게 여비에 보태라고 하시면서 적지않은 여행비를 주시는 거겠죠.
엄마와 애들의 이름은 전혀 모르지만- 하느님 치부책에 적혀있을 테니- 늘 그들의 초라한 모습과 함께
감사지정을 기도중에 잊을 수가 없는 거지요.
얼마 후 점심 때가 되어 음식점엘 들어갔습니다.
저에 대한 손님 예우로 그래도 괜찮은 메뉴로 식사를 한 후 값을 치루려고 하니까
어느 낱선 손님이 이미 계산하고 나가셨다 하니, 참으로 황당하고 고마울 데가...!
방학시기에 스코트랜드의 한 본당이 딸린 수도원에 한동안 거주한 적도 있었습니다.
주일 미사가 끝나 신자들이 나오면서, 게중에 어느분이 저를 찾는 겁니다.
그러면서 봉투 하나를 쥐어주겠지요. 순간 저는 언짢은 마음이 들어- "내가 뭐 거지인가?" 하는- 머뭇거리자니,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요. 기도해 달라는 예물이니까요."하며 미소를 지으시는 겁니다.
나중에 의문이 풀렸지만, 그곳 사람들은 그렇듯 봉헌하는 의미로 선교지역 나라 수도자에게
도네이션(봉헌) 예물을 그런 식으로 바친다네요.
어디 위의 예들 뿐이겠습니까?
제 인생 여정 중에 만나 이렇게 저렇게 유사한 도움을 준 분들을
고마움과 더불어 기도중에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되겠지요.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지만, 저는 유독 유사한 은혜들을 많이 입어
감사와 기도를 게을리할 수가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