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엘범 사진을 보노라면 그때의 일들이 어제처럼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해 저는 선배되시는 '신베드로' 형제님(수사님)과 함께 오대산엘 갔었답니다.
방학 때라 형제님의 고향인 주문진엘 갔다가 함께 산엘 오른 것이지요.
마침 그 형제님의 사촌형 되는 분이 상원사에 계시다기에 둘이서 방문을 간 것이구요.
정갈한 분위기의 상원사가 무척 마음에 들었고, '서대(西臺)'라는 암자는 상원사에서도 길없는 길을 헤집고
한참을 올라가는 일컬어 오대산 서쪽의 최고봉인 거지요.
그곳에 그냥 시골집인 조그마한 암자가 있었고 거기에 '런닝 스님'이 혼자 수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왜 '런닝 스님'이냐 하면은, 추운 겨울에도 보통 런닝만 입으시고 지내시며 산을 오르내리시는 분이라
아래의 상원사에서 그렇게 별명을 부르는 겁니다.
오대산 월정사-상원사-암자인 서대에 갔다가 만난, 일명 '런닝 스님'과의 포즈입니다.
강원도 산중의 하나인 오대산의 겨울이 어디 녹녹한 추위인가요?
그런 곳에서 스님은 런닝만 입고 지내신다니, 첫 일별에도 기골이 장대하시고 보통 기가 샌 분이 아닌 듯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둘이서 길도 없는 숲을 한참 헤쳐 찾아간 '서대'의 분위기가 한마디로 으시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정상의 한 봉우리이면서도 햇볕이 쨍쨍해야할 대낮인데도 잔뜩 음기가 가득한 어둠을 느꼇으니요.
저는 그곳에 다다르자마자 속으로 벌써부터 괜히 왔구나 하는 웬지 불편한 심기로 빨리 하산하고픈 마음이 드는 겁니다.
하지만 함께 간 형제님은 그런 나의 심기와는 달리 그곳에서 1박을 할꺼라나요?
저는 스님과 잠깐 이야기 끝에, 마침 아래 큰 절에 갈 일이 생겼다는 스님을 따라 얼릉 나섰답니다.
신베드로 형제님을 혼자 놓아둔 채, 스님과 저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상원사를 향해 다시 내렸갔습니다.
내려가면서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엄청 큰((1m 이상 되는 체격) 부엉이를 만나, 금방이라도 우리를 덮칠 것 같은 위압감!
하지만 야행성이라 옆을 지나치면서도 무서움에 스님의 꽁무니를 바싹 따르던 기억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스님과 내려가면서 적잖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저의 수도생활에 대한 질문에 답도 해드렸고,
암자에서 혼자 지내시면서 괴담같은 귀신 체험 이야기며 독사 이야기...등, 허무맹랑한 허구같은 사실 체험담을 구구절절이 해주시는 겁니다.
말씀인 즉은, 그 암자가 있는 지형이 기가 너무 샌나머지 먼저 살다간 스님들이 그 기에 눌려 몇 분이나
목매달아 자살을 했답니다. 그리고 밤마다 거핏하면 귀신들이 나타나 협박도 하고 애원도 하며 특히 함께 지내자는 목없는 귀신!
새벽 기상시 고무신을 신을려면 수시로 신짝 속에 똬리를 틀고있는 독사...!
그럴때면 스님은 엄중히 말을 하신답니다. "썩, 나가지 못할꼬! 어디 집 안에까지 들어 와 사람을 놀래키노."
그러면 말을 알아듣듯이 스르르 밖으로 나가곤 한답니다.
그 런닝 스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제 엘범에 있어,
어쩌다 볼 때면 상원사와 서대에 찾아갔던 소상한 일들이 어제련듯 되살아 옵니다.
그 '런닝 스님'은 아직 살아 계실까요? 후로 한번도 다시 갈 기회가 없었지요.
* * *
두번째 사진은 5명의 형제들이 설악산 2박 3일의 서북능선을 종주한 것이랍니다.
아마도 그 능선이 그리 험할 줄 알았다면 저는 결코 합류하지 않았을 테지요.
영문도 모르고 산행이 좋다는 것만 염두에 두고 따라 나섰으니, 저 혼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산행길이었느니까요.
중간 몇군데엔 경사가 매우 심한 제법 긴 벼랑 바위가 있어 한 발 한 발 내딛는데도 어지러움이 몰려 와 그냥 눈을
꽉 감고 싶을 정도! 아마도 혼자였다면 도저히 온 길을 되돌아 갈 수도 없는 그런 진퇴양난의 코스였던 거죠.
다행히 일행 중 산악 전문가 못지않은 '실베스텔' 형제가 안내를 잘 해 주어 한 발 한 발 발을 뗄 때마다 잡아주어
십년감수 바위를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긴 등정이라 중간에 이틀을 텐트치고 밤을 지새기도 하여, 텐트 속 빗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세세함이
스폰지처럼 오감에 빨아들여진 듯한 특이한 느낌들!
또 미사도중 가방을 들락거리던 다람쥐의 귀여움에- 글쎄 미사 주례를 하시던 백레오 신부님이 주혜를 하시다 말고 당신 가방을
뒤지는 다람쥐의 부산스러움에, 손으로 쫒으시는 웃으운 장면! -넉을 빼아겼던 재밋는 순간도 있었구요.
흠뻑 땀에 젖은 몸을 알몸인 채 계곡에 텀벙 뛰어들던 형제들의 즐거웠던 한 때의 모습이며...
'고진감래(苦盡甘來)'라더니, 그렇듯 험한 등반의 경험은 그만큼 깊고도 즐거운 추억을 안겨 주었고
상봉터미널에 도착했을 시엔, 마치 낱선 외국에 몇 년 동안 휘돌아 온 그런 기분이었으니까요.
그만큰 힘든 등반임에도 무거운 카메라를 놓지않고 함께한 덕분에 얻은 귀한 사진이기에-
함께 했던 5명의 형제들 모습이 마치 구름 속 신선들의 바둑놀이 같은 그런 느낌으로 다가와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답니다.
5명의 형제들이 설악산의 서북능선을 몇박며칠 등반하면서 찰칵!
설악산 서북능선이여! 하느님의 멋진 자연 작품이여!
내 인생 여정에서 단연 백미로 꼽히는 경험이여!
하느님께 무한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