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온 누리에 평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아오면서, 진정한 제 친구들이자 이웃은 뉘(무엇)일까?"
사람일 수도 있고 사람이 아닌 어떤 대상일 수가 있을텐데,
사람은 서로가 스치면서 좋아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받고 주기도 하여 늘 그 관계가 변화무쌍합니다.
과연 나를 지탱해 주는 믿을 만한 존재가 있다면...?
늘 인간관계 속에서 떠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제게는 사람들이 아닌 작은 사물들과의 일상적 교류가 더 충족함을 가져다 줍니다.
방 안에 있는 몇 가지 친숙한 대상들이 그런 것들이죠.
늘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작은 사물들이니까요.
또 복도와 식당에 있는 여러 화분들,
그리고 정원에 오래된 나무며 일년초, 텃새인 직박구리...와 같은 생명들은 위의 사물들보다 더 가까이 제 삶 속에서
살아있는 것들- 매일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풀을 뽑는 따위의 보살핌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주는 것 이상으로 저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는 이런 생명들이야말로
제 삶을 지탱해 주는 썩 믿을 만한 존재들임을 부인할 수가 없는 거지요.
엊그제 오랫만에 다녀 온 '성거산'만 하더라도,
제가 지내왔던 6년지기 진한 우정인을 느낄 수 있었지요.
거기엔 성지 내의 다양한 야생화들이 반기고 있었고 우거진 술 속의 새들이며
예 그대로인 작은 계곡과 '천흥리' 저수지와 산의 비단같은 흐름들!
그런데 수도원 내 군락지를 이루고 있던 귀한 구절초며 용담, 타래 난...들은 모조리 제초기에 잘려버려
마치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처럼 전혀 볼 수가 없어 마음이 짠했답니다.
역시 사람의 지나간 흔적은 자칫 깊은 상처의 골을 남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주 정원의 친구들과 교감을 나누노라면, 계절에 따라 그 친구들이 가져다 주는 속삭임이 달라
여름인 오늘만 해도 화려한 꽃을 선사해 주는 무궁화며 인동꽃, 나팔꽃과 백일홍, 채송화, 수국, 샛노란 오이꽃, 몇 그루의 장미,...
그리고 빗방울이나 겨울에 하늘거리며 쌓이는 눈도 마찬가지.
사시사철 아름다운 꽃이나 열매, 과일, 자연의 모습을 선사해 주는 이런 친구들!
오죽하면 하느님의 계시라고 까지 할까요!
하느님의 고독 속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머무르는 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나의 이웃들, 나의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