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 / 선
'교황님과 수도자들과의 만남'이란 목적으로, 대중 교통 뻐스를 이용해 저로서는 약 10여년 만에 꽃동네를 방문했습니다.
그동안 꽃동네는 모든 면에서 더욱 대형화된 느낌이었고,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버려진 약자들을 위한 시설로서
한국 사회에 크나 큰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것에, '오웅진'신부님의 노고에 보탬도 덜함도 없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10여년 전, 저는 그곳 남녀 수도자들의 피정을 맡아 1주간 머무르면서 강의를 해드렸답니다.
그땐 꽃동네 수도자들이 프란치스칸 재속 3회 수도회로서 출범하였기에 프란치스칸 영성을 배우는 시기였죠.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오웅진 신부님 개인의 성향이 수도자적이기보다는 교구식으로 흘러선지
프란치스칸 영성과는 차츰 거리가 멀어졌고, 지금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그 영성의 정체성을 알 길이 없지요.
아무튼 그때 피정 강의를 해드리면서 소탈하신 오웅진 신부님과 식사를 함께 하면서 지낼 수 있었던,
그 꽃동네의 규모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엄청 대형화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교황님과 수도자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장애 아이들, 어른들과의 만남으로 시간이 너무 오바되었기에 수도자들과의 만남 예정은 축소될 수 밖에요.
수천명의 수도자들석 먼 발치에서 뵈었던 교황님에 대하여
제 기억으로는 사회 약자들에 대한 수도자들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무엇보다도 소비하회에 물들지 않고
청빈의 삶을 잘 지키며 살아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 외에는 특이한 게 없었고,
예전(1985년)에 교황청에서 직접 뵈며 악수를 나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과는 사뭇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의 구현을 실천하려면 가난을 실천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라고 해야 할까요.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전공하신 교황님다운 풍모가 여실했던 거지요.
어쩌면 수도생활의 본질을 떠나, 머리와 말로만 '가난'을 신자들에게만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정작 자신들은 지나치게
잘 먹고 마시는 수도원이나 수도자들이 있다면, 교황님의 말씀이 크나 큰 경종이 되겠지요.
예수회원인 교황님이 '이냐시오'가 아닌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딴 것도 어쩌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
프란치스코 성인의 가난 영성이 절실하셨기 때문일 겁니다.
아침 8시쯤에 출발하여 그곳에 도착,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웠고 저녘엔 그곳에서 나누어 준 카스테라 하나로 2끼니를
해결하면서 오가는 시간과 기다림의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노구의 교황님이 하루 종일 그 많은 대중들 인파 속에서 시달리시면서도 건재하게 진행하시는 걸 뵈면서
하느님 영의 도움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해너미 설핏한 햇살을 받으며 뻐스를 타러 나오는 거리만 해도 사뭇 걸려
정동에 돌아오니 밤 10시 20분.
하루 종일 흘린 땀으로 샤워를 하고는, "짧은 일정, 저리도 무리하시는 우리 교황님, 건강을 베푸소서!"라는 기도와 함께
귓전에 맴도는 "비바 크리스도, 비바 파파!"라는 환호 소리를 의식하면서 이내 꿈 속으로 골아떨어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