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와 선
"에∼효! 무서운 녀석들!"
말벌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위와같은 섬찍한 말을 되뇌이게 됩니다.
왜냐구요? 역시 성거산에서 지내을 때의 일이지요.
두 번 말벌에게 쏘여, 병원 응급실에 찾아가 주사를 맞아도 약을 먹어도
상당한 여러 날이 지나도 붓기와 아픔이 좀체로 가라앉질 않는 겁니다.
부황을 전문으로 뜨는 어느 재속회원에게 부탁하여
꽤 많은 양의 피를 뽑고서야 서서히 치료와 안정이 되었던 것이죠.
어떻게 말벌에게 쏘였느냐고요?
한 번은 주방에서였고 두 번째는 제의 방에서였습니다.
한옥식 건물이라 틈새가 많아선지 크고 작은 벌들이 종종 주방에서도 날아다니곤 했습니다.
이전엔 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어, 실내에서 돌아다녀도 그대로 방관한 채 내버려두곤 했었지요.
그날따라 주방 담당이라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정에서 왱왱거리며 돌아다니던 말벌 한 마리가 느닷없이 하강을 하더니 제 손목을 쏘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나마 머리를 쏘이지 안았던게 천만다행!)
두 번째의 쏘임은,
불을 키려 제의방엘 들어가려는 찰라 발에 뭔가 뭉클하는 느낌이 있더니만
웬걸 발목이 뜨끔 이상한 감이 드는 겁니다.
아니나다를까 불을 키고 보니 역시 말벌 한 마리가 돌아다니는 겁니다.
이미 발등을 쏘인 거지요. 그런 경험이 있던 터라 큰일났다 싶어 119에 위급 호출을 청했지요.
저의 119란 다름아닌 부황을 잘 뜨는 그 재속회원!
그렇게 두 번이나 말벌에게 쏘인 이후엔 '벌'하면 지례 두려움이 앞서는 겁니다.
숲 속 일을 하다보면, 수시로 잘못 벌집을 건드려 위험이 도래할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
다행히 6년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 *
그런 경험으로 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지요.
"그 때 말벌들이 왜 나를 쏘았을꼬?" 거기엔 반드시 뭔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뒤늦게 자연의 품 속에 들어 가 살면서도
마치 인간 스스로가 주인공인 듯 행세를 하여, 기존에 오랜 세월 살아오던 자연 생물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기가 쉬운 겁니다. 말하자면 주객(主客)이 전도 되었다고나 해야 할지...
그러면서도 걸핏하면 인간은 은연중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기세에 등등하여
순박한 자연에 대하여 해를 끼친다 여겨 마구 폭력을 휘두르는 겁니다.
말벌만 하더라도 말벌 집이 보이기만 하면 무서운 공격의 대상이라 여겨
살충제나 불을 질러 인정사정 없이 없애버리는가 하면, 다시는 사람 사는 인접지역에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거지요. 객(客)이 주인(主人)을 함부로 말살하는 격이 아닌가요?
그러니 말벌의 입장에선 아무리 미물이지만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깊숙히 인지되어
공격의 대상이 될 밖에요.
주방에서 느닷없이 저를 쏘아버린 말벌 역시
공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몹쓸 (자연에 대한) 만행에 대한 단호한 의지였으리라 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함)란, 인간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자연관계 안에서도 인간이 필시 숙지해야 할 미덕이란 생각이 드는 거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