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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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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평화를 빕니다.

 

  최근 쉬는 날, 서울 둘레길 전체를 시간나는대로  걸어 볼 요량이 생겼다.  전체 다 걸을려면 족히 40Km는 된단다.  지난번 천호대교길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길로, 사당역에서부터 출발- 왼쪽으로 관악산을 낀 중턱길을 계속 걷는 거였지만 평지길이 전혀 아닌 제법 가파른 곳이 많아 트레킹 코스라기보다는 등산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관악산하면 내 어린시절의 또 다른 애잔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다름아닌 할아버지, 엄마, 둘째 삼촌에 관한 이야기- 6.25 동란 후 온 국민이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이었기에, 세 분 역시 그 대열에서 예외일 수 없었던 동지기 능말이라는 동네에서 지냈을, 내가 초등학교 훨씬 이전의 어린시기였으니, 그 까마득한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신통방통한 내 기억력임에랴!


  어쨌던 그 시절, 세 분 어른들은 집식구들 호구지책의 방편으로 능말에서부터 뒷산(현재의 현충원 공작봉)을 넘어 멀리 관악산까지 자주 나무를 하러 가셨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닌 관악산에서 나무지게로 그 무거운 나무짐를 짊어지고 오셨을 세 분의 노고가 지금도 뇌리에 삼삼해지는 거다.  

  그 시절만 해도 나는 너무 어려서 세 분이 어떤 곳으로 나무를 하러 가시는 건지 전혀 몰랐었고, 몇 년 후 동지기 뒷산으로 어쩌다 여치 소리에 홀려 멀리 능선까지 올라보면,동지기 뒷산에서 우람한 관악산이 한 눈 조망권에 들어왔고 , 그 중간에 길고 넓게 펼쳐진 밭고랑 외에는 집 한채 없는 황량한 지역이요, 멀리 관악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염주대가 아련히 보일 뿐이었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계속 내려다 본 오늘날의 그 지역은 서울대학교를 위시하여 빽빽한 집들과 아파트들로 가득 메워져 너무도 많이 변화된 금석지감의 서울임에랴! 

  그렇게 나무를 해오시어 할아버지가 시내에 내다 팔으셨다.  부지런하신 세 분 덕분에 호구지책이 어려워 너나없이 쌀밥이 아주 귀했던 그 시절, 보릿고개에도 우리 집엔 늘 밥상에 짜르르르 윤기가 흐르는 햇쌀밥이 떨어지는 날이 없었으니까.     


  어쨌거나 관악산 둘레길에서 내려다 본 광활한 그 지역, 전무하다싶던 집들에 그 무거운 나뭇지게를 짊어지고 걸으셨을 세 분의 모습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거다.  특히 엄마는 아녀자의 몸으로 사내들도 감내하기 힘든 나뭇짐을 지셨으니 그 억척을 어이 다 감당하셨을꼬!  엄마를 떠올리면, 늘 그렇듯 장하신 엄마에 비해 왜 나는 모든 면에서 이리도 나약하고 비리베리할꼬 의아해지면서 더욱 존경심이 가지는 것이다.

  할미꽃, 진달래가 만개했을 봄이면 멀고도 먼 관악산을 오가시면서 워낙 꽃을 좋아하신 엄마려니 봄꽃들로하여금 많은 위안을 받으셨을테지...  먼 시야에 들어오는 염주대를 바라보시면서 무얼 생각하시며 걸으셨을까.  예수님을 아시기 훨씬 전이었으니까 부처님께 자비를 빌으셨을지도...!  모시적삼에 흠뻑 적시셨을 엄마의 그 땀냄새는 아마도 저녘이면 품에 안은 어린 나에게도 전이가 되었을테고...관악산은 내게 이렇듯 엄마의 땀이 밴 예사의 산이 아닌 거다.


  하산을 하면서 언뜻 내 초교 동창인 김정임(아가다) 자매가 그곳에서 멀지않은 동리 아파트에 살고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오랜 기간 정동수도원 혼배 때 알토 파트를 잘 불러줬고, 3년 전 자매는 혜화동 성당에서 성가 합창연습을 긑내고 내려오는 초겨울 빙판길에 뒤로 넘어져 그만 1년 가까이 식물인간으로 깨어나지 못했었다.  기적처럼 깨어나, 지금은 외출은 못하지만 어눌했던 말씨도 제대로 돌아왔고 기억력도 거의 정상이다.  오랫만에 전화를 걸으니, 몹씨 반기는 목소리!  활달한 도우미 아줌마와 애완견이 급작스런 손님의 방문을 반겼고...자매의 표정도 정상에 가깝게 아주 좋아져 하느님께 감사!!! 

  아가다 자매 역시 내 엄마처럼 어린 남매를 흑석동에서 홀로 잘 키워낸 분.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도 요즘의 못된 여자들같지 않게 어머니께 잘 해드린단다.  다만 외출할 기력이 미흡하여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다는 하소연과 함께 기도 좀 많이 해 달란다.  

  그랬다. 내 엄마나 아가다 자매나 한생을 남편없이 홀로 자식들을 억척스레 잘 키워낸 장한 어미들이 아닌가!  여전히 아련한 염주대의 자태가 엄마들을 굳게 지켜준 관악산의 지키미처럼 다가온다.  걸핏하면 "나는 관악산의 정기를 받아...운운" 하는 내 자신에 대하여 피식 웃음 지으면서, 엄마나 아가다 자매의 돈독한 성모님에 대한 신심에 찬탄을 아낄 수가 없다.

 

  옛 엄마들은 대단함을 넘어 성모님을 닮은 위대한 분들인 게다.

  엄마가 참 그립고 보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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