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와 자비
어제 강화의 글라라 수녀원에서 장마리안나 수녀님의 종신 서원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인 그제, 사회를 봐달라는 급작스런 전갈이 와 관구장님과 다른 두 형제들과 함께 참석했지요. 아마도 수십년 혼인 사회를 해 온 까닭에, 사회를 보는 것에 대한 노하우를 지녔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서원식에 임하면서 맨 앞자리에 앉으신 수녀님의 부모님이 참 이상적이었죠. 따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시는 밝고 기쁘신 모습! 결혼을 하는 자녀들 앞에서라면, 그 앞날에 대한 염려로 만감이 교차하는 부모님의 심정이겠지만, 하느님께 오롯이 모든 걸 맡기시는 수녀님의 부모님께서는 뿌듯한 신심의 내외면을 여실히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어린 수녀님도 부모를 닮아선지, 매우 활달한 그 표정에서 하느님 사랑에 대하여 잘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리란 예감이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주변 수도생활에 임하는 수도자들에게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잘 할 수 있을꺼란 내성적인 사람보다 오히려 외향적 활달함의 소유자가 더 잘 살아가는 것을 흔히 보아 오지요. 더군다나 봉쇄의 삶을 살아가는 글라라 수녀님들 같은 경우에 더욱 그러하니까요.
그런데 사회자 역할보다는, 막상 그런 서원식을 대할 때마다 새록새록 떠지는 슬픈 추억이 있습니다. 뭔고하니, 바로 내 '엄마에 대한 죄송함', 불효!
이미 12년 전에 하느님 품으로 가신 엄마건만, 왜 잊지를 못하고 있는건지...!?
오래 전 대전 목동수도원에서 성대서원을 발했을 당시, 저는 아무도 초대를 하지 않았고 심지어는 엄마께도 알리지 않았으니까요. 무슨 어카 심정에서가 아니라, 그 당시엔 세속의 모든 걸 버린 처지에 너나없이 부모 형제들이나 가까운 친지들을 오시게 한다는 것조차 제 스스로 용납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적어도 엄마께는 그리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책감이 자꾸만 드는 겁니다.
세상에 저같은 별난 녀석도 다 있네요...!!!
서원을 발하는 마리안나 수녀님이 참 대견스러웠고, 거기에 참석하신 부모님의 행복하신 모습에 함께 감사의 기쁨으로 사회를 진행하면서, 간간히 저의 끼를 발휘하여 사진에 담았고, 끝난 후 수녀님의 부모님께도 전송해드렸습니다.
비록 평생을 좁은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수녀님들이지만, 기도와 신심을 통해 온 세상에 활짝 열려진 기쁨을 전하는 하느님의 정배요 사도들! 저 또한 작고 미약한 기도로서 함께 해 드리면서 자꾸만 수녀님 부모님께 눈이 가지는 거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