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와 자비
사순시기도 어느덧 중반을 지나고 있습니다.
2월의 끝자락인 어제, 함박눈이 내려 소복히 쌓였지요. 아쉽게도 금방 녹아버렸지만...!
그런 눈이 내릴 때면, 으례히 어린시절 어느 해인가 성탄 무렵에 엄청 눈이 많이 내려, 온 누리가
온통 은백색으로 변해 환희에 찼던 기억이 새로워집니다. 그리고 그런 좋은 추억에 대한 유별난 기억력에 스스로 감탄을 금치 못하곤 합니다.
그렇듯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며 또한 나와 주변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러기에
어쩌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좋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과연 행복한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르던 늦던 제대로 참회하며 하느님을 올곧이 추구하는 사람 만이 행복할 수 있을진저...세상과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와 평온의 삶을 영위하는 존재일껍니다. 평소에 그 어떤 것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는 자유로운 영혼 말입니다.
따는 일생을 지내 온 나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요, 누군가의 엄마 아빠라는 부모로서, 금쪽같은 아이들로서, 남편이나 아내로서,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동료나 친구 학교 동창으로서, 저같은 수도자로서...각자 처해진 자리에 덤으로 이렇듯 아름다운 세상에 던져진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이랍니까!
인왕산에 올랐을 적에, 벌써 2주 전쯤엔가 햇볕 따사한 양지녘에 첫 봄꽃이 피어 반갑고 소중한 나머지 카메라 앵글에 고이 담아 두었습니다. 이후로 몇 차례 영하의 꽃샘 추위에도 인고의 생명줄을 놓지않는 여리고 여린 작은 존재가 감탄 그 자체였습니다.
하기사 어느 해인가 3월에도 춘설이 분분하여 못내 가슴을 졸이게 했던 끈질긴 생명! 산 자락에 역시 홍매화, 흰매화 꽃봉오리가 봄을 향한 여정 채비에 벙그러질 듯 하는 모습에도 제 가슴이 뛰었고 마냥 설레었답니다. 이렇게 어김없이 2016년의 봄이 살곰살곰 오는 게지요. 어디 매화 뿐이 겠습니까? 가는 생명 가지 마다에 눈에 띄게 물이 오르는 양은, 매년 대하는 봄이건만 그에 감탄을 놓칠 수 없었으니까요.
며칠 전 어는 형제의 배려와 사랑으로 '윤동주 시인'에 관한 필름을 보았습니다.
마치 일제라는 지독한 꽃샘 추위의 압박에 피어나지 못하고 급기야는 스러져버리고 만 시인의 생애를 담은 슬픔이 절절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한 줄기 스쳐가는 바람 결에도 고통을 느낀..." 그런 귀절들을 그저 감상적인 싯귀로만 잘못 알았던...!
그렇습니다. 때로는 세상 삶이 녹녹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내 존재의 끈을 섬세하게 엮어 놓는다면, 어느 한 순간 이 세상에 던져졌지만 유일무이한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직 차가운 봄바람이어도, 온통 세상엔 어쩔 수 없이 따스한 봄기운이 돌 겁니다.
특별히 사순시기가 아니더라도,
매 순간순간이 나를 돌아 볼 수 있고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소중한 지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