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와 자비
"할머니, 옛날 얘기 해 줘요."
"인석아, 지난 번에 해 줬구먼. 또 해 달라구...? 옛날 얘기 너무 좋아하면 가난해져요...!"
"응, 응,...할머니, 가난해져도 좋으니까 또 해 주세요!"
(그렇게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걸핏 졸라대면, 이미 들은 얘기 건 새로운 얘기 건 실타래처럼 들려주신 할머니의 옛날 얘기는, 어쨋던 끝없이 재미있었다.)
할머니 말씀대로, 그래서 이렇게 가난과 선(善)과의 필연적인 관계를 잘 깨달은 '가난뱅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제자로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할머니의 따뜻한 베개 무릎이나 옛날 얘기를 듣고 자라는 아이가 요즘에는 과연 얼마나 될까, 핵가족으로 인해 너무 달라진 요즘 세상이 아닌가.
엄마는 직장에 다니셔야 했기에, 엄마 대신 늘 할머니의 치마폭을 떠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내 어릴 적엔 두 삼촌에다 바로 밑 작은 집 까지 식구(食口)들이 늘 10명이 넘는 대가족이었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의 나에 대한 내리사랑은 여러 명 손주들 중에서도 으뜸이셨으니까. 오죽하면 그 시절에 뭐든 첫 째로 치던 장손인 형 마져도 할머니 사랑은 나에 비해 별로셨으니... 추측컨데, 형은 아무거나 잘 먹고 건강하여 거의 밖에서 뛰어노는 편이었고, 나는 약골에다 입맛도 까다로와 할머니가 챙겨주지 않으시면 안먹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시키지 않아도 공부는 형보다 쪼매 잘 하는 편이었으니, 할머니 보시기에 참으로 귀여운 손자였으리라. 어디 그 뿐이랴! 바늘과 실처럼 거의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말씀 상대가 되어 드렸기에, 아마도 나 때문에 할머니는 심심치 않으셨으리라.
하나의 예로, 지금 뉘 뭐라지 않아도 거의 많은 형제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정원 일만 하여도, 할머니 곁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보아 두었던 노하우가 있어, 직접 해 본 일은 없어도 추후 좋아하게 된 일들인 것이다. 또 내가 영세하기 이전이었음에도,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세례를 받으신 할머니셨기에, 새벽 미사에 그토록 열심히 따라다녔고, 집에서 하시는 할머니의 기도 시간엔 꼭 함께 해 드렸으니까.
근자에 정원의 작은 텃밭에 잘 자라고 있는 애호박 덩굴을 보노라면, 유독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성거산 수도원에서 지낸 6년 지난 세월에, 거기서도 텃밭 호박은 단골 메뉴였다. 첫 해 어린 호박을 심어놓고는, 영양이 턱없이 부족해선지 잎이 노랗고 잘 자라질 않는 거였다. 참으로 이상하네...! 고개를 갸우띵하면서 생각해 보았다. 어릴 적 둔덕에 호박을 심어놓으시고는 수시로 뭔가를 열심히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게 바로 요강의 오즘이었던 거다. 그래서 성거산의 노르딩딩한 호박에다 얻어들은 풍월은 있어 며칠 삭힌 오즘을 그 둘레에 주어봤다. 그런데 웬일인가? 기적처럼 싱싱한 잎과 덩굴이 끝없이 자라며 호박이 달리는 게 아닌가.
호박 덩굴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 하고, 약손인 할머니 손에 관한 본 이야기를 해야 겠다.
걸핏하면 "할머니, 배 아파!"
그 시절엔 기생충이 많았었고 꼭꼭 씹어먹지 않으니 쉽게 체할 법도 했다. 그럴 때 제일 먼저 필요한 게, 약손인 할머니 손!
바로 눕혀 윗 옷을 걷고 작은 배를 들어내면, "할머니 손은 약손, 할머니 손은 약손,...!", 그리 반복되시는 할머니의 주문으로 웬만한 배아픔은 금방 났는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어서, 약손임이 증명되곤 했다. 심한 쳇기로 그래도 났지 않으면, 윗 집 병수 형아네, 침쟁이 할머니를 찾아 가 침을 맞았는데 참으로 무서움이 앞서 죽으러 가는 것처럼 싫었다.
이런 약손이 사라진 요즘 시대...아이들이 배탈이 나도 배를 문질러 주실 할머니보다는 즉방 약국이나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겠기에 거기에 약이나 주사 바늘은 있어도 지그시 바라보시며 문질러 주시는 약손, 할머니의 자애로운 약손은 없으리라.
시대가 달라져도 할머니의 약손이 있으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정서적으로 좋으랴 싶은 생각이 드니 말이다.
특히 자비를 역설하시는 교황님의 말씀이 잘 실천되려면, 할머니의 약손보다 더 좋은 자비가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