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평화와 자비
그렇습니다. 작년 한 해동안 참으로 많은 국내 성지를 찾아다니며 순례를 하였고, 그런 와중에 진솔한 만나들도 적지않아 행복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특히 최근에 있었던 일들 몇 가지를 다시금 지면에 올려봅니다.
최근 경남 산청 성심인애병원에 계신 '김점례(마리나)' 할머니가 갑짜기 쓰러지시어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다는 전갈을 받았지요.
이제 연세가 지긋하시어 언제 하느님 품으로 가실지 모르는 그런 분이기에, 그저 무심히 지나치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병문환을 드려야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요즘에야 성심원이란 좋은 시설에서 지내시지만, 자식들조차도 사회적인 불이익이 초래할까 잘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분의 나환우란 오랜 한 생애가 얼마나 쓰거우셨을꼬 짐작하고도 남아, 남의 일같지 않게 눈물이 앞서는 겁니다.
찾아 뵈니 너무나 황송해하시는 그 모습! 이미 오래 전에 눈이 멀고 입은 삐뚤어져 정상적인 몰골은 아니시지만 할머니의 후광엔 이미 하느님과 함께 하시는 천사의 빛이 역력했습니다. "저같은 사람을 그렇듯 먼 길 마다않고 찾아주시다니...이렇게 황송할 떼가...!" 그러시면서 한끼 식사라도 하라시며 막무가내로 2만원을 쥐어주시는 겁니다. 그 때 함께 방문해 주신 봉사자, '젤뚜르다' 자매님 역시 참으로 고마운 분입니다. 늘 만나 뵐 때다, 그 마음 씀씀이가 여간하지 않으신 분...세상은 그럼 분들이 있어 더욱 아름다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돌아오는 길엔 가까운 진주에 들러, 재속회원으로 몇 십년 지기 알고 지내는 '빅토리아'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이 할머니는 정확히 1981년 성대서원 직전 서원 피정을 하기 위하여 칠암동 본당에 머무르면서, 꿈 해몽 관계로 알게 된 특이한 사연이 있는 분입니다.
오래 전 영국에서 만나 가까이 알고 지내며 그래도 잦은 만남이 있던 초로의 수녀님이 한 분 계시는데, 지난 해 후반기부터 갑짜기 외출이 어려워지셨습니다. 전화 통화나 문자 메시지...등 도무지 받지않으시기에, 알아 본즉은 치매 초기 현상이시라는 것. 그래서 케잌 한 상자를 사들고 시흥의 수녀원을 찾아 뵈었죠. 다행히 그리 심각할 정도는 아니셨지만, 이제 혼자 외출하시는 건 불가.
직접 뵈어 편안해 보이시는 수녀님을 대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기사 인생이란 이렇게 살아야 옳다 저렇게 살아야 행복한 것이다...저마다 답을 내어 놓지만, 실상 정답이 없는 법.
다만 스치는 바람 결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고, 풀과 나무, 새나 동물들...이 지구상에서 함께 호흡을 느끼며 동반자로서 살아감을 깊이 의식할 때..그런 곳에 세상에 대한 나 만의 욕심을 채우려는 기만없이 한 세상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어린 시절, 좋은 어른들 밑에서 잘 자랐고, 짧은 직장 생활에서 좋은 상사들을 만나 별탈없이 지낸거나 수도원에 입회한 이후에도 선배나 동료 형제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온 저로서는, 이 한 생애가 그지없는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마 2017년 새해에도 변함없이 베풀어야 할 작고 큰 자비가 넘쳐나겠지요. 한 세상 소풍온 것처럼 즐거울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