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찬미 합니다~!!!
제가 지난 주말(10월9일)에는 모처럼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지난 9월 중순)에 제 휴대폰으로 전화가 한 통화 왔었어요.
“여보세요?” (여자분 목소리)
“아, 자매님이세요?”
[제 휴대폰으로 전화해올 사람은 저희 식구 아니면 본당의 형제자매님이 대부분이시기에
저는 그때 잠깐 착각했었어요.]
“성호냐?”
“아, 명숙이 누님?”
지금 서울에 사시는 사촌누나의 전화였습니다.
오랜만에 전화해 주셔서 제가 몰라봤어요.
“우리 딸이 10월 9일에 시집간다.”
“아, 그러세요. 결혼식에 저도 가봐야죠. 장소는 요?”
“그날 오후5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뮤지엄 웨딩홀 이야.”
“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저희 집이 작년 여름에 이사했기에 청첩장을 제때 못 받았어요.
아마도 전에 살던 주소로 청첩이 갔겠죠.
그래도 누님이 저를 기억하고 휴대폰으로 알려 주셔서 다행이었어요.
저는 토요일(9일) 오후에 제 차를 운전해 대전역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밥 벌어먹고 있는 중구청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10분 정도 걸어서 “대전역”에
도착했어요.
서울까지 제 차로 직접 갈수도 있겠지만, 서울 시내 도로가 복잡하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1년에 몇 번 서울에 갈 일 있을 때는, 주로 기차여행을 합니다.
KTX로 대전↔서울이 1시간 정도이니...
그저 운전하느라 신경 안 쓰고, 마음 편히 다니는 게 좋아요.
그런데, 서울시내에서는 지하철 타고 땅속으로만 다니니, 발전한 서울시내를 구경할 일은
별로 없어요. (하하하)
서울역에 도착하자 저는 지하철 4호선으로 “삼각지 역”에 갔어요.
미리 인터넷으로 예식장을 확인했기에, 초행길이라도 어렵지 않았지요.
드디어 도착한, 용산 전쟁기념관.
예식시간이 30분 정도 남았기에 저는 경내를 둘러보며 결혼식장으로 갔어요.
6.25전쟁 당시 형제간인 박규철(국군 소위)과 박용철(인민군 하전사)가 원주 치악고개 전투에서 극적으로 만난 순간을 재연한 “형제의 상”이 인상 깊었어요.
마침 무슨 공연이 있는 지, 무대가 설치된 곳에 서울시민들이 길게 줄을 지어 있던데,
가을이라 여기저기 행사가 많았겠죠.
그날 한강변에서는 세계불꽃축제가 열려 20만명이상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던 데,
아무튼 저는 무지 막혔다는 서울거리 교통에도 불구하고 예식시간 이전에 잘 갔습니다.
나중에 늦게 도착하신 하객들 말씀을 들으니, 한강변 도로가 행사로 많이 막혀 예식에 늦었다던데... (쩝~!)
결혼식장인 웨딩홀 3층 무궁화홀에서 혼주인 사촌누님 내외와 큰어머님, 고모님, 사촌형님 동생들과 여러 친척 분들을 만났습니다.
멀리서 어려운 걸음 했다며 환대해 주셨으니, 반갑고 감사한 분들이죠.
더구나 저는 저의 하나뿐인 친동생 바오로를 보았어요.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편히 계시는 저희 부모님은 슬하에 아들만 둘 두셨어요.
저와 제 동생 바오로. 저는 쥐띠(60년생), 바오로는 토끼띠(63년생)입니다.
바오로 밑으로도 아들(제게는 막내 동생)이 하나 더 있었지만, 첫돌이 되기 전에 일찍 세상을 하직한 슬픔이 있었어요.
그 당시엔 “영아 사망률”이 무척 높았던 우리나라 였지요.
지금 제 동생 김영균 바오로는 부산에서 살고 있어요.
부산은 제 아들인 요한이가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다, 제 처 작은아버지와 처사촌오빠들 같은 처가 친척들이 여러분 살고 계시고, 저의 하나뿐인 동생네 식구들이 있기에 더욱 기억되는 도시입니다.
저는 태종대 방문과 아들 자취방 구하러 몇 번 가본 일 있죠.
올 년초에는 해군에서 제대한 요한이가 복학을 준비할 때 제 차를 운행해 가봤는데,
대전에서 부산까지 당일에 다녀오려면 무지 바빠서 시내 명소는 다녀보기 힘들어요.
여름 휴가철에 시간 내어야 제대로 다녀보겠건만... (ㅠㅠㅠ)
그날 용산전쟁기념관 웨딩홀에서의 결혼식은 개신교 목사님 주례로 있었어요.
제가 그동안 목사님이 주례 서시는 결혼식을 여러 번 가보았지만,
이번처럼 결혼식을 예배 형식으로 하는 건 처음 보았어요.
“화촉, 예식사, 신랑신부 입장, 찬송, 말씀, 설교, 서약, 예물교환, 축복기도, 성혼선언, 축가, 인사, 안내, 축도, 첫출발”까지. 마치 교회에서의 예배 같았어요. 30분정도 걸린 결혼예배 였지요.
그런데, 제가 아녜스와 결혼할 때는 청주 사직동 성당에서 혼배성사로 하였는데, 1시간30분이 걸렸었으니 30분이면 약소했죠? (ㅎㅎㅎ)
저는 초등학교(물론, 당시는 국민학교라 했었죠.) 시절, 친구 따라 크리스마스때 교회(예배당)에 가면 맛있는 빵과 사탕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갔었던 개신교 예배당이었지만,
예식장에서 결혼예배를 보게 될 줄이야...
저는 가톨릭 평신도로서 신랑신부에게 축하인사를 하고,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바라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결혼 예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한 다음에는 피로연 식당에서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즐거움을 만끽했죠.
저는 동생과 일가친척 어르신, 사촌들과 함께 1인당 27,000원 뷔페식을 실컷 먹었습니다.
맛있는 식사에 쐬주와 맥주를 섭취하여, 알코올로 전신소독(全身消毒)을 확실히 했지요.
“주종불문(酒種不問)에 두주불사(斗酒不辭)”를 아직도 좋아하는 저입니다요. (하하하)
그러고는 저는 대전으로, 제 동생은 부산까지 가야해서 먼저 자리를 일어나 서울역으로 갔지요.
집에 돌아와서는 대전을 꿋꿋이 지키고 있던 짝지 아녜스에게 서울에 가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짝지의 몸이 더욱 좋아져 어디든 마음껏 다녀보면 기쁘겠어요.
벌써 10월도 중순입니다.
멋진 가을날에 사랑하는 분들과 항상 행복한 날이기 바랍니다. 샬롬~!!!
제가 지난 주말(10월9일)에는 모처럼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얼마 전(지난 9월 중순)에 제 휴대폰으로 전화가 한 통화 왔었어요.
“여보세요?” (여자분 목소리)
“아, 자매님이세요?”
[제 휴대폰으로 전화해올 사람은 저희 식구 아니면 본당의 형제자매님이 대부분이시기에
저는 그때 잠깐 착각했었어요.]
“성호냐?”
“아, 명숙이 누님?”
지금 서울에 사시는 사촌누나의 전화였습니다.
오랜만에 전화해 주셔서 제가 몰라봤어요.
“우리 딸이 10월 9일에 시집간다.”
“아, 그러세요. 결혼식에 저도 가봐야죠. 장소는 요?”
“그날 오후5시,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뮤지엄 웨딩홀 이야.”
“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저희 집이 작년 여름에 이사했기에 청첩장을 제때 못 받았어요.
아마도 전에 살던 주소로 청첩이 갔겠죠.
그래도 누님이 저를 기억하고 휴대폰으로 알려 주셔서 다행이었어요.
저는 토요일(9일) 오후에 제 차를 운전해 대전역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밥 벌어먹고 있는 중구청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10분 정도 걸어서 “대전역”에
도착했어요.
서울까지 제 차로 직접 갈수도 있겠지만, 서울 시내 도로가 복잡하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1년에 몇 번 서울에 갈 일 있을 때는, 주로 기차여행을 합니다.
KTX로 대전↔서울이 1시간 정도이니...
그저 운전하느라 신경 안 쓰고, 마음 편히 다니는 게 좋아요.
그런데, 서울시내에서는 지하철 타고 땅속으로만 다니니, 발전한 서울시내를 구경할 일은
별로 없어요. (하하하)
서울역에 도착하자 저는 지하철 4호선으로 “삼각지 역”에 갔어요.
미리 인터넷으로 예식장을 확인했기에, 초행길이라도 어렵지 않았지요.
드디어 도착한, 용산 전쟁기념관.
예식시간이 30분 정도 남았기에 저는 경내를 둘러보며 결혼식장으로 갔어요.
6.25전쟁 당시 형제간인 박규철(국군 소위)과 박용철(인민군 하전사)가 원주 치악고개 전투에서 극적으로 만난 순간을 재연한 “형제의 상”이 인상 깊었어요.
마침 무슨 공연이 있는 지, 무대가 설치된 곳에 서울시민들이 길게 줄을 지어 있던데,
가을이라 여기저기 행사가 많았겠죠.
그날 한강변에서는 세계불꽃축제가 열려 20만명이상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던 데,
아무튼 저는 무지 막혔다는 서울거리 교통에도 불구하고 예식시간 이전에 잘 갔습니다.
나중에 늦게 도착하신 하객들 말씀을 들으니, 한강변 도로가 행사로 많이 막혀 예식에 늦었다던데... (쩝~!)
결혼식장인 웨딩홀 3층 무궁화홀에서 혼주인 사촌누님 내외와 큰어머님, 고모님, 사촌형님 동생들과 여러 친척 분들을 만났습니다.
멀리서 어려운 걸음 했다며 환대해 주셨으니, 반갑고 감사한 분들이죠.
더구나 저는 저의 하나뿐인 친동생 바오로를 보았어요.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편히 계시는 저희 부모님은 슬하에 아들만 둘 두셨어요.
저와 제 동생 바오로. 저는 쥐띠(60년생), 바오로는 토끼띠(63년생)입니다.
바오로 밑으로도 아들(제게는 막내 동생)이 하나 더 있었지만, 첫돌이 되기 전에 일찍 세상을 하직한 슬픔이 있었어요.
그 당시엔 “영아 사망률”이 무척 높았던 우리나라 였지요.
지금 제 동생 김영균 바오로는 부산에서 살고 있어요.
부산은 제 아들인 요한이가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다, 제 처 작은아버지와 처사촌오빠들 같은 처가 친척들이 여러분 살고 계시고, 저의 하나뿐인 동생네 식구들이 있기에 더욱 기억되는 도시입니다.
저는 태종대 방문과 아들 자취방 구하러 몇 번 가본 일 있죠.
올 년초에는 해군에서 제대한 요한이가 복학을 준비할 때 제 차를 운행해 가봤는데,
대전에서 부산까지 당일에 다녀오려면 무지 바빠서 시내 명소는 다녀보기 힘들어요.
여름 휴가철에 시간 내어야 제대로 다녀보겠건만... (ㅠㅠㅠ)
그날 용산전쟁기념관 웨딩홀에서의 결혼식은 개신교 목사님 주례로 있었어요.
제가 그동안 목사님이 주례 서시는 결혼식을 여러 번 가보았지만,
이번처럼 결혼식을 예배 형식으로 하는 건 처음 보았어요.
“화촉, 예식사, 신랑신부 입장, 찬송, 말씀, 설교, 서약, 예물교환, 축복기도, 성혼선언, 축가, 인사, 안내, 축도, 첫출발”까지. 마치 교회에서의 예배 같았어요. 30분정도 걸린 결혼예배 였지요.
그런데, 제가 아녜스와 결혼할 때는 청주 사직동 성당에서 혼배성사로 하였는데, 1시간30분이 걸렸었으니 30분이면 약소했죠? (ㅎㅎㅎ)
저는 초등학교(물론, 당시는 국민학교라 했었죠.) 시절, 친구 따라 크리스마스때 교회(예배당)에 가면 맛있는 빵과 사탕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갔었던 개신교 예배당이었지만,
예식장에서 결혼예배를 보게 될 줄이야...
저는 가톨릭 평신도로서 신랑신부에게 축하인사를 하고,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바라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결혼 예배를 마치고, 사진촬영을 한 다음에는 피로연 식당에서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즐거움을 만끽했죠.
저는 동생과 일가친척 어르신, 사촌들과 함께 1인당 27,000원 뷔페식을 실컷 먹었습니다.
맛있는 식사에 쐬주와 맥주를 섭취하여, 알코올로 전신소독(全身消毒)을 확실히 했지요.
“주종불문(酒種不問)에 두주불사(斗酒不辭)”를 아직도 좋아하는 저입니다요. (하하하)
그러고는 저는 대전으로, 제 동생은 부산까지 가야해서 먼저 자리를 일어나 서울역으로 갔지요.
집에 돌아와서는 대전을 꿋꿋이 지키고 있던 짝지 아녜스에게 서울에 가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짝지의 몸이 더욱 좋아져 어디든 마음껏 다녀보면 기쁘겠어요.
벌써 10월도 중순입니다.
멋진 가을날에 사랑하는 분들과 항상 행복한 날이기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