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와네트와 박근혜
마르코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유독 신경을 쓰신 것이 악령에 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는 것이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며 자신을 정화하신 후 선교 사업에 동참할 제자들을 뽑으시고 제일 먼저 하신 일이 카파르나움 회당에 가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에게 악령을 쫒아내심으로서 소생시킨 사화가 나온다.
이어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셨는데, 그중에 당시로 보면 불치의 병으로 여겨지던 나환자도 고쳐 주심으로 병의 고통에서 인간을 해방시킴이 당신 구원 활동의 기본이었음을 전하고 있다.
이렇게 여러 치유의 내용이 전달되는 과정에 통쾌하면서 감동적인 것은 5장에 나타나고 있는 게라사 지방에서 악령에 들려 온갖 파괴와 자해를 일삼고 있는 사람을 악령에서 쫓아내시면서, 그 악령이 돼지 떼에게 들어가 그 돼지가 호수에 빠짐으로서 악령에서 해방되었다는 시원하고 상쾌한 내용이 있다.
그런데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악령 치유의 많은 것은 정신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심한 정신장애를 악령의 작용으로 본 것도 있었으나, 악령의 존재는 오늘 교회도 인정하기에 구마사(Exorcist)라는 것이 사목의 특수 분야로 존재하고 있다.
성서가 아니더라도 역사에서 악령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행동을한 위인들이 있었다.
무고한 유대인 약 6백 만명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 그 밑에서 충복으로 활동하다 전쟁이 끝난 후 알젠틴에서 은신 중 이스라엘 비밀경찰 모사드에 의해 덜미가 잡혀 이스라엘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Adolf Elchumann: 1906- 1962) 등이 있다.
아이히만은 재판정에서 자기는 군인으로서 상부의 명령에 따랐기에 아무 죄가 없다는 진술을 했을 때, 한나 아렌트라는 유대인 철학자가 그의 죄를 인정하게 만들면서 이 과정에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이론을 제시하고, 이것이 그의 범죄 이유가 되면서 교수대로 보냈다.
악이란 보통 괴물 같은 흉측하고 사악한 인간이 저질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 실은 너무 평범한 인간, 자기대로의 인생을 성실히 사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반인륜적 반인간적 범죄가 범죄행각이 뚜렷한 특정인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학력 신분 등 겉으로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헌재로부터 그동안에 저질러진 엄청난 범죄로 인해 파면 선고를 받은 박근혜가 상식이 있는 사람들을 엄청난 경악과 실망에 빠트리고 있다.
그 주위에 잡배 수준의 인간들의 옹위를 받으며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겠다.
어디 아이히만 뿐인가, 이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으로 유일하게 처벌받지 않았던 일왕(日王) 히로히도와 그 수족으로 진주만 공격으로 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 도조 히데키(1864- 1948)는 많은 아시아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선사한 악귀 수준의 인간이었으나 놀랍게도 그에겐 인간미 넘치는 면이 있었다.
그가 군 지휘관으로 있을 때 사병 식당의 쓰레기통들을 뒤지며 병사들의 영양 상태에 대단한 관심을 보였고, 제대하는 병사들의 취업까지 알선하는 자상한 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히틀러 못지않게 악질이었던 일왕 히로히도의 오른팔로서 이차 세계 대전의 주모자 역할을 하다 전쟁 후 전범재판에서 교수형을 받았다.죽기 전 그는 독실한 불자(佛者)답게 불경을 염송하면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무고한 수 백만명의 사람을 괴롭히고 고통을 준 악마가 가까운 몇 사람에게는 이유를 모르는 인정을 베푼 천사로 변신하는 두 개의 얼굴을 보였다.
그러기에 근년에 그의 손녀는 할아버지 도조를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조부는 평화를 사랑하셨으며 친절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자신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 했으며, 그의 죄라면 조국을 사랑한 죄 뿐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자, 박근혜는 어떤 짓을 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불사조로 여겼던 그의 추종자들이 한심한 추태를 광기수준으로 시작했다.
그중에 박근혜의 동생인 박근령도 성조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들고 맞불집회라는 양식이 있는 사람에겐 좀 수치스럽게 보이는 집회에 나와 “언니는 위대한 순교자인데, 정치 타살을 당했다며”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더 효율적인 학살을 위한 수송차까지 고안했던 아이히만이 자기는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기에 아무 죄도 없다는 그에게 한나 아렌트는 그의 죄목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 가지의 무능성을 언급하면서 그를 단두대로 보냈다.
한나 이렌트에 의하면 아이히만의 죄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인데, 이것은 곧 판단의 무능성(inability to judge)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한 판단의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의 결격자는 범죄인이라는 것이 이론이다. 이 철학자가 헌재 판결에 참석했다면 위와 똑같은 이론으로 박근혜를 심판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지닌 박복함중에 하나가 바로 지도자다운 지도자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베트남에는 호지명, 필립핀에는 호세 리쟐 , 터키에는 카밀 파샤가 난세에 일어나서 나라를 지키고 국민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준데 비해 ,조선왕조에서부터 백성들은 지도자답지 못한 왕들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우리 민족안에 깊이 내재한 "엽전 근성"이라는 자괴적 열등감의 표출은 바로 지도자 답지 못한 지도자가 있는 나라에서 시달린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어두운 정서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조선왕조의 손꼽히는 무능한 왕으로 평가되는 선조는 책임감도 신념도 없으면서 오로지 왕의 자리에만 연연했던 수치스러운 지도자였다.
1592년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시작하자 그는 백성들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갔다. 백성이야 어떻게 되던 말던 자기는 주군(主君)인 명나라 천자의 품속에 안기겠다는 참으로 수치스럽고 비굴한 처신을 했다.
충주에서 신립 장군의 저항 외에는 별 저항 없이 한양에 입성한 왜병들은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것을 보고 너무 놀라고 황당해했다.
당시 일본 정부 지도자의 기본 태도는 전쟁터에서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거나, 아니면 자살하거나 둘 중에 하나인데 , 백성을 버리고 도망친 선조의 행동은 왜병들까지도 놀라게 만들었다.
아이히만의 단두대 사형, 도조 히데기의 단두대 사형, 박근혜에게 내린 파면은 이런 면에서 범죄의 동질성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많은 국민들이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박근혜를 뽑았는데, 그는 그동안의 적폐를 집약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실망의 수준을 넘어 분노의 주체가 되었다.
그는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여러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지도자의 맨 뒷자리에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임진왜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도망친 선조,
어리석은 정책으로 청나라로부터 삼전도의 굴욕을 당함으로서 많은 백성을 비참한 노예로 만든 인조,
무능한 왕으로 나라를 일본에 넘긴 고종,
해방 후 첫 대통령인 이승만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백성들에게 피난가지 말고 자리를 지키란 유시를 남기고
혼자 한강을 건너 도망친 대통령이었고,
퇴임 후 부정으로 감옥에 간 전두환 노태우 등
참으로 지도자 다운 지도자가 없었던 척박한 우리의 현실이었다.
청와대 출신의 공주로 추앙받는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는 잔인한 유신독제로 자기 수족과 같은 정보부장의 총탄에 살해되었다.
이제 박근혜는 자연인으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동안의 과거는 차치하고 요 며칠 사이 국민에게 준 실망을 대단하다. 눈송이가 위에서 굴러 내려올수록 커지다가 아래로 오면 한번 굴림에서 그동안 굴린 것 보다 더 부피가 커지는 것처럼 파면을 선고받고 청와대를 떠나 사저에 칩거하는 과정에서 보인 실망과 분노는 대단하다.
그는 청와대를 떠나면서 “언젠가 진실은 밝혀질 것이다.”라는 그가 즐겨 사용하던 유채이탈 화법으로서도 이해가 힘든 황당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는 헌재에서 밝혀진 “파면”이라는 것은 그가 저지른 업보에 대한 진실이다.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말은 일말의 수치심도 없는 백치 수준 여성의 독백으로 들린다.
이미 밝혀졌는데 현재, 과거 ,과거 완료의 사실을 부정하고 다시 미래로 돌리는 것은 그를 가까이 보아온 어떤 지인이 평가한 백치라는 평가가 수긍의 정서로 다가온다.
삼성동 집에서 그동안 그가 모은 여러 계층에 속한 폐족(廢族)집단을 모아, 근처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등교까지 불안하게 만들면서 새로운 행보라는 구차스럽고 수치스런 연극의 한막을 연출하고 있다.
마리 앙투와네트는 오스트리아 함스부르크 왕가의 공주로 정치적 이유에 의해 프랑스 국왕인 루이 16세와 결혼하였는데 남편인 루이16세는 착한 성품이긴 하나 왕으로서는 무능과 무기력을 겸비한 위인이었으며, 그의 선조가 지은 베르샤이유 궁전 공사에다 명분도 없이 도운 미국 독립 전쟁 지원의 경비로 국가 경제가 말이 아닌 처지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사치와 안일에만 빠져있던 왕실의 분위기였다.
그후 왕의 신체가 정상으로 되면서 4명의 자식을 낳았으나 그의 생활 태도는 오스트리아 함스부르크 왕가의 공주 생활에서 익힌 습관이 프랑스 왕실에서도 계속했다.
희고 고운 피부와 탐스러운 머리 늘씬한 체형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고 그는 고급 의상 구입과 머리 손질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면서 , 당시 프랑스 패션을 주도하는 선두주자의 역할을 했다.
미용에 대한 앙투와네트의 특별한 관심과 투자는 세월호 사건이 있을 때도 연루된 대통령 박근혜의 청와대에서의 미용에 대한 광적인 취미와 시대를 초월한 동지 관계를 보였다.
남편에 대해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 여인에게는 정사가 따르기 마련이기에 미남의 스웨덴 무관과의 연문을 일으키면서 자기 인생을 즐겼다.
1792년 시민 혁명에 의해 그와 루이 16세는 콩코드 광장에서 만인이 주시하는 가운데 단두대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그녀를 미워하던 프랑스 국민에 의해 그녀는 악녀로 각색되었으나, 사실 그는 몸단장과 사치가 왕비로서의 주 사명으로 여긴 것 외에 악한 짓으로 남을 해고지 한 것은 없었다. 수학 여행 학생 수 백명을 수장시키고도, 그 동안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그 시간에 연루된 온갖 더러운 추문들의 주인공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근혜와는 비길 수 없이 그는 약간의 개인적 결점 속에 안주한 여인이었다.
가난에 허기진 백성들이 베르사이유 궁전에 몰려와 빵을 달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왜 저런 추태를 연출하는지 라고 반문했다는 것은 근거도 없는 낭설에 불과하며, 그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자란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구김살 없는 인간미도 있었다.
마차를 타고 가다 길을 잘못 들어 농부의 밭을 망친 것을 알고 그기에 대한 보상을 명하는 등 큰 선행은 없어도 적어도 인간의 기본을 보일 수 있는 순수하고 착한 면은 지닌 여인이었다.
마리 앙투와네트는 자기의 안일 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줄 모르는 백치 여인과 같은 삶에서도 이런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 불행 속에서야 겨우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녀가 했던 이 말은 단두대에 오르면서 함스부르크 왕가의 공주로서의 품위를 지키며 계속 이어지는 신문에서도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일상적 사치 생활에 몰두한 것 외에 남을 해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단두대에 오르는 날, 콩코드 광장에는 수많은 혁명 군중들의 함성이 아우러지는 참으로 무서운 처지였으나, 그녀는 이런 처지에서 공주와 왕비로서 의연한 품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단두대로 오르다가 잘못해서 사형 집행인의 발을 밟았을 때 그녀는 즉시 사과의 말을 남기면서 프랑스 왕비로서의 품격과 자존심을 남기고 처형되었다.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청와대에서 성장하면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공주로서의 대접을 받은 면에서 마리 앙투와네트와 닮은 면이 있다.
비록 박정희가 독재로서 유신을 통해 많은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것은 사실이나, 그래도 경제성장이라는 관점에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감성적 동의에 의해 그의 딸이라는 것이 긍정적 요소로 부각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저런 사연에 의해 그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탄식이 연발되는 사건과 소문의 주인공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파면이라는 불명예의 처지가 되었다.
자연인으로서 법정에 서기 이전 박근혜가 해야 할 일 두 가지가 있다.세월 호 참사로 희생된 영혼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능하고 파렴치한 대통령이기 이전 모성을 지닌 한 인간 여성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이다.
마치 마리 앙투와네트가 교수대에 오르면서 사형 집행인의 발을 밟은 것에 대해 사과한 것처럼 너무도 큰 고통을 안겨준 국민에게 떠나면서 남기는 마지막 예의와 같다.
그다음 삼성동 사저에 모이는 사람들로 대표되는 지지자들을 제 자리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우리 말에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이 있다. 박근혜는 자기가 뿌린 씨를 거두는 마음으로 이 사람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려 사이비 종교 집단의 교도가 교주에게 보이는 집단 최면적 광기를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인간적 추태를 자신의 힘 인양 착각하는 인간은 아무리 아침마다 연예인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경비를 지출하며 머리 손질을 해봐야 백치 수준의 불쌍하고 추악한 여인에 불과한 법이다.
그리고 선배격인 마리 앙투와네트가 남긴 말을 곱씹을 때, 사람 냄새가 나는 새로운 아름다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 속에서야 겨우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연인 박근혜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자기 아버지를 위시해서 우리 역사에 나타나고 있는 수치스런 지도자들의 마지막 자리에서 자기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 역사에서 수치스런 지도자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한 그가 현실이 아닌 과거의 한 사실로 기억될 수 있도록 처신하는 것이다.
프랑스 출신의 가톨릭 작가 죠르쥬 베르나노스는 그의 작품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에서 인간은 하느님과 악마의 싸움터라고 했는데, 이것은 세상의 흐름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인류 역사상 항상 악마는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인간을 괴롭혀 왔기에 성서에서도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하다가 실패하자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루카 4: 13) 고 기록하고 있다.
박근혜로서 악의 역사가 마무리 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언젠가 가슴에 촛불의 불씨를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
언제 다시 필요할 때 촛불을 밝힐 수 있는 그런 순순한 열정에 사로잡힌 용감한 마음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