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전 요즘 제방 창문 넘어에있는 까치부부 한쌍이
까치집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까치들이 둥지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누가 하나 가르쳐 준적도 없고 배운적도 없는
까치들이 뛰어난 건축기술로 둥지를 짓는 모습은
보면 볼수록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까치들이 둥지를 짓는 경이로운 모습을 통해서
하나의 기적을 보는것과 같았습니다.
그것은 곧 창조주이신 하느님 경이로우신
하느님의 모습을 까치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과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자연의 현상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이고 초현실적인 것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적은 하느님의 사랑과 그 모습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또는 보여지는 것입니다.
단지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만을
뜻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과는 전혀 무관한
마술이거나 초능력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창조된 모든 곳곳에는
하느님의 기적이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기적이외에
또 다른 하나의 기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왕실관리인인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바로 또 하나의 기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실관리의 아들을 다시
살려주심으로 인해서 생명이신 하느님,
치유하시는 하느님, 전능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우
리에게 전해주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그 반면에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고자하는
왕실관리인인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전해주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는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라고
말씀하신 바와 같이 즐거움과 기쁨으로 사는
이들은 즐거움과 기쁨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기적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기적을 필요로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변할수록 더 많은
기적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기적이라고 해서 마술이나 초능력과 같이
신기하게만 여겨지는 그러한 기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을 전해주고 보여줄 수 있는
그러한 기적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가 기적이라고 하는 의미를 잘 깨닫고
살아간다면 우리 역시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주변 곳곳에서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경쟁사회가 된 이 사회에서는
사랑이라는 기적이 필요한 때이고,
가정과 직장에서 사회 곳곳에서는 불목 보다는
평화라는 기적이 필요하고,
요즘과 같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부정과 부패로 일그러져 있는 사회에서는
정의라는 이름의 기적이 필요한 때입니다.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고 믿고 사는 모든 이들이
행할 수가 있는 은총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