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미사 주례하시는 청원 형제님께 이미 앞서 들으셨겠지만,
전례시기 적으로 사순 제 4주간은 대림 3주간은 장미 주일로서
사제는 제의를 보라색이 아닌 장미색을 입게 됩니다.
이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새 생명으로 부활하시는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시기에 앞서 육체적 극기나 단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사순시기 안에서
극기로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기쁜 날이 가까워있음을 알려줌으로서
더 큰 희망과 위로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요사이 듣게 되는 독서와 복음은 주로 구원자로서의 예수님의 모습으로서
사람들을 회복과 변화시켜 주시고,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부각되고
이러한 예수님께서는 진정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오늘 제 1 독서와 복음에서의 핵심 주제는
모든 것을 살려내고 고쳐주는 “물”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아우르면서 예로부터 물이 귀한 팔레스티나에서는 물이 있는 샘은
생명력을 부여하는 하느님의 힘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샘 부근에 성소를 짓기도 하는데, 예루살렘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1독서에서 예언자 에제키엘은
이러한 새로운 시온이자 새 예루살렘 그곳에 세워진 성전 밑에서 흐르는 물을 통해서
그 물이 흐르는 모든 것을 살려내는 환시를 보게 됩니다.
아울러 오늘 복음에서 벳자타 못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도
이러한 물에 몸을 담그면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곳에 모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두 명의 인물에게 주어진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습니다.
바로 에제키엘과 서른 여덟 해나 벳자타 못에 누워있던 사람입니다.
에제키엘이 그 환시를 보았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은 어떠하였을까요?
에제키엘이 이 환시를 예언하였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당시 자신의 고국의 수도인 예루살렘 함락과
자신들이 믿음을 굳건하게 해준 성전 파괴라는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사건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에제키엘은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 안에서 역설적으로 멸망과 불행이 사건의 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것이라는 믿음 아래
새로운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세상의 모든 생물을 다시 살려내는 환시를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 또한 병들어 고통받으며 베짜타 못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스런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모여 있었고
그중에서도 38년이라는 그 긴 시간 동안 거동이 불편하여 못에 들어가지 못한 가장 힘든 사람 앞에
예수님이 다가가 그를 치유하여 주는 모습은 그 긴 시간의 고통은 다 지나가고
새로운 희망을 전해주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제는 우리의 삶 안에서 우리를 씻겨 주고 치유하는 것은
벳자타와 같이 단순히 샘에서 나오는 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치유해 주시는 물이시며, 그 물 주위에서 머물 때
우리는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살아가기 어려워지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한 절망적 상황 안에서 어느 순간 하느님을 찾는 세상 사람들이 희미해져가고 있고,
심지어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이름을 꺼내는 것조차 무척이나 어색해 하고
때로는 인간적인 부분이나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일반사이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세상뿐 아니라, 수도원안에서도 생활하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서로가 생각하는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드물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 있어 오늘의 1독서와 복음은 어떠한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 안에서도
하느님을 향하고 하느님 통해서 희망을 가지도록 우리에게 다시금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이미 생명의 샘이신 주님이라는 물가에 모여와 있다는 사실에 대해 늘 기억하여야 하고,
그분을 통해서 구원되었고, 변화되었으며, 치유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와 찬미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