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저녁나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쓰는 편지
어둠을 딛고 걸어오는 빛에게
느티나무 가로수 연초록 새순들에게
열정을 불태우는 철쭉들에게
안개 낀 보리밭 사이로 막 피어난 유채꽃에게
봄의 함성을 지르는 온갖 새들에게
청순한 젊음을 지닌 수천만의 생명들을
하나씩 호명하며 편지를 씁니다.
작고 초라해 보이는 나이든 이들
잊혀 진 추억들을 꺼내어 보고
내면의 해일을 겪어내는 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창의와 개성을 가꾸면서
의미와 가치
긴 안목의 공익에 참여하면서
높고 귀하고 변하지 않는
주님의 영의 현존아래 머물고 싶은 간망을
오랫동안 지니고 살아온 이들에게 쓰는 편지는
내 인생의 오후를 들여다보게 합니다.
헐겁고 편안하게
이해받고 포근하게 있고 싶은 그들과 나는
이제 친구가 되었습니다.
오랜 염원을 지니고 살아온 그들에게
갓 태어난 음악처럼 청순한 우정을 담아
쾌적한 봄바람에 실어 보냅니다.
단비와 햇살이 여러 차래 노크하면
바위조차 부풀어 오르는 봄의 새벽에
내면의 충일과 공허가 공존하는 심연에서
연기처럼 소진한 시간을 돌아보며
영의 현존아래 머물러 있습니다.
겉은 번쩍 거리듯 하면서
속은 괴로운 소용돌이로 넘쳐있는 사람
명예는 지녔지만 사랑에 굶주린 사람
재물은 많지만 친구가 없는 사람
여러 사람과 있을 때는 용감하나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일에는 겁을 먹는 사람
나약하고 무력하게 짊어진 삶의 무게를
나 또한 지고 갑니다.
우리는 마침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진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도록 허용하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내가 지고 가는 짐이 가벼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밤의 끄트머리에서 쓰는 편지는
황혼의 저녁나절을 보내는 이들에게서 끝을 맺습니다.
주님의 아들딸로서
이렇게 존재함이
그리고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다시 태어나는 새 하루를 봉헌합니다.
2017. 4.19 새벽에
이기남 마르첼리노 마리아 형제 o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