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오늘 축일 묵상을 하다가 아주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축일을 왜 지내지?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찬미하기 위해서?
찬미만 하면 된다면 이것은 주님 아부축일이 아닐까?
그러니까 찬미만 함은 주님 면전에서 당신의 사랑은
참으로 대단하시다고 아부하는 축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찬미만 하라고 주시지 않고
우리가 실제로 먹고 마시라고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먹고 마시지는 않고 찬미만 한다면
잘 차려진 밥상에 감탄만 하고 먹지 않는 꼴입니다.
밥상을 차린 사람이 감탄만 하라고 잘 차렸을까요?
너무도 멋지니 먹어치우지 말고 보존하자고 할까요?
가끔 식당에 견본음식이 있는데 그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찬미하고 나면 이제 그 사랑을 먹어야지요.
이때 우리가 주님께는 감사의 찬미를 드리는 것이 되고
우리 자신에게는 사랑을 듬뿍 받아 모시는 것이 되어
주님과 우리 자신 모두에게 흡족한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체와 성혈을 모시는 데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혼자 밥을 먹는 것과 같이 먹는 것 두 가지가 있듯이.
먼저 혼자 먹는 것을 볼 터인데 여기서 말하는 혼자 먹는 것은
관계가 단절되거나 형성되지 않아 혼자 먹는 부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혼자도 잘 먹는 긍정적인 차원, 자기를 위한 영양섭취 차원입니다.
그러니까 성체와 성혈 축일의 개인적인 차원으로서
떠들썩하게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혼자서 음미하며
오랫동안 씹은 다음 온 몸에 영향이 고루 가게 먹듯이
성체와 성혈을 마치 사랑의 주님과 몰래 데이트하듯이
그렇게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사제의 특권으로 가끔 그렇게 합니다.
미국에 있을 때 거의 매 주일마다 그렇게 했고
요즘도 혼자 미사 드리게 되면 시간을 충분히 갖고
주님이라는 밥과 술을 천천히 음미하며 모십니다.
성체와 성혈을 모시고 주님 말씀 한 구절 묵상하고,
또 한 번 모시고 다른 구절을 묵상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성체와 성혈은 같이 모시는 차원도 중요하지요.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하는 말씀이 바로 이 차원입니다.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사실 같이 나눠야지 성체와 성혈을 제대로 영하는 것입니다.
성체와 성혈은 그저 영향분일 뿐 아니라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거나 싫으면 그와 같이 밥을 먹습니까?
어쩔 수 없어 같이 먹더라도 혼자 꾸역꾸역 밥만 입에 집어넣겠지요.
그러므로 성체와 성혈은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나누고
사랑을 위해 같이 나누는 성사입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독상을 차려주시기도 하지만
자식들 모두 모였을 때 떡 벌어지게 한 상 차려주시듯
주님도 당신의 사랑을 나에게만 몰래 주시기도 하고
같이 나누라고 모두에게 풍성한 사랑을 주시기도 하지요.
성체와 성혈은 나만을 살리는 영향분이 아니라
우리를 같이 살리는 사랑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