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성당 The Cathedral(1908)
작가: 오구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 -1917)
크기 : 대리석 64 X 29.5 X 31.8cm
소재지 : 프랑스 파리 로뎅 미술관
프랑스의 중류 가정에 태어나 가톨릭 학교의 교육을 받고, 수녀원에 입회했던 누나의 갑작스런 사망에 충격을 받아 그 자신이 수도자가 되고픈 마음으로 수도원에 입회했다가 그의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알아 본 원장 신부의 지혜로운 권고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느 길에도 그렇듯 혼신의 노력으로 제작한 작품이 경연대회에서 낙선되는 쓰라림을 겪으면서도 끈기 있게 도전하여 늦게나마 유럽을 깜짝 놀라게 할 작가로서의 두각을 드러내게 되었다.
예술가로서는 늦은 나이인 37세에 그가 제작한 “청동시대”가 유럽 조각계에 충격을 주게 되었다. 그전까지 조각은 그리스의 조각처럼 이상적 인체의 묘사가 주 관심이었는데, 이 작품은 팔을 뒤로 해서 머리를 만지고 있는 젊은 남자의 모습이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숨 쉬는 인간의 모습이어서 충격을 주었다.
즉 역사와 신화 차원의 인간 조각을 현실 세계로 끌어들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게 된 것이다. 1900년도 개최된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그의 작품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을 만큼 그는 성공한 작가로 매김 하게 되었다.
이렇게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자, 그의 주위엔 좋은 음식을 찾아드는 파리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고 이 중에 대종은 그의 모델이 되고픈 여성들이었기에 그의 여성 편력은 그의 일생을 지배한 큰 명암을 띈 현실이 되었다.
로뎅은 인간의 육체를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미켈란젤로처럼 인간의 육체를 하느님의 작품으로 보았기에 대리석 청동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인간의 육체를 통해 표현되는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접근하고자 노력했다. 입맞춤(1898), 영원한 우상(I Eternelle Idole 1899), 신의 전령 이리스(Lris messagere des dieux 1891), 파울로와 프란체스카(1906) 등 인간 육체의 아름다운 모습 뿐 아니라, 늙은 창녀를 주제로 한 작품 “‘창녀였던 여자’처럼 늙은 여인의 축 쳐진 젖가슴과 알몸을 보이면서 지금도 너를 안아주는 사내가 있느냐”라는 독백으로 육체의 실상에 접근하게 만들었다.
“여성이란 성스러운 존재이다”라는 신념에서 시작된 그의 여성 편력은 광적인 집념으로 일생을 이어지면서 그의 여성 편력은 1917년 그의 나이 77세에 50년간 교제해온 로즈 브레와 결혼함으로서 막을 내렸다.
로즈는 작가의 젊은 시절 모델로서 많은 도움을 준 동반자이나 계속 동거하면서도 잦은 외도로 신경을 쓰게 만들다, 죽던 해에 결혼함으로서 그의 여성 편력에 종지부를 찍었다.
인기 있는 작가로서 그의 주위에 몰려든 여성들 중에도, 카미유 마르텡과의 관계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남을 만큼 끈질기면서도 강렬한 것이었다.
결혼 1개월 후 로즈는 세상을 떠나고 그 역시 그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다.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으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로의 오른 손을 맞댄 형상이다. 이는 두 사람 이상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사랑의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여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마태 18,19)
기도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두 손 사이의 비워진 공간은 중세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며, 빛을 받아 형성되는 오색 빛의 프리즘 효과는 신비로운 천상의 공간으로 인도한다. 이 "대성당"은 하느님에게 선택받은 자들만을 위한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려있다. 이 작품은 끝없이 열려있는 하느님의 드넓은 사랑이 단순화되고 정제된 표현의 결정체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작품 중 신체 한 부분을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것이다. 작가는 대성당(la cathedrale)과 비밀(le secret: 1909) 두 작품을 인간의 손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대성당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장소이며 크기 이전에 어떤 계급의 사람들도 다 모일 수 있는 하느님 백성들의 집이다. 작가가 살던 프랑스에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들이 대종이었으며, 하늘을 향해 높이 올라가는 첨탑, 성당 안을 장식하고 있는 아치 등은 하늘을 향해 오르고픈 인간의 열망, 즉 미사 전문에 나타나고 있는 “마음을 드높이”라는 열망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가톨릭 신자로 살았기에 대성당에 대한 이해와 친근감이 강했다. 따라서 그의 일생을 지배했던 많은 형상 중 대성당이 중요한 주제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 작품 제작 후 1914년에 다시 “대성당”이라는 주제로 글을 남길 만큼 작가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 되었다.
오른손 두 개가 합체 된 것이며 대성당이란 제목을 달기 전에는 “계약의 궤”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십계명을 새긴 석판을 넣고 지성소(至聖所)에 안치한 궤로서 , 야훼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정신의 구심적이었다.
이스라엘인들이 광야를 유랑하는 동안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 작은 상자를 늘 귀하게 여기며 가지고 다니다가 나중에 그것을 예루살렘 성전에 안치하였다. 모세에게 내려진 십계명의 석판 두 개 외에도 황금으로 된 만나(Manna) 접시와 아론의 지팡이가 이 함 속에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오른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은 크리스챤의 기도와 공동체 영성의 주요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지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오 18: 19- 20)
너무도 꾸밈없이 단순한 손을 모으고 있는 틈새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 이 검박하면서도 단순한 손은 바로 꾸밈없는 고딕 대성당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 담백한 고딕 대성당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통해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 12)라는 성경 말씀이 고딕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앞에 섰을 때처럼 극명히 드러나는 곳은 없다. 대성당은 어떤 특정 계급에게만 유보된 공간이 아닌 모든 이에게 열린 공간이어서 중세기 대성당을 지을 때 그 지역 주민들이 다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짓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것이다.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공간으로서의 대성당, 인간의 모든 애환을 다 들어주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중생을 어머니처럼 안아주시는 성모님의 망토 자락을 붙들 수 있는 곳이기에 대성당은 모든 크리스챤들의 마음의 고향이라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참으로 자기가 그리던 마음의 고향을 표현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로 태어나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인간적인 주제를 남긴 그가 실제 삶은 제도적인 교회를 떠난 처지가 되었다.
잦은 여성 편력, 분방하고 걷잡을 수 없는 생활 속에서도 그는 대성당에서 만났던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도 잊지 못하는 삶을 살았기에 생애 말년에 이 작품을 남긴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의 신앙고백이요 확인으로 볼 수 있다.
수도자들의 성무일도 기도의 마무리 부분에 이런 기도가 있었다.
“하느님 우리 주의 어지심이 우리위에 내리옵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인간의 작은 손 두 개가 겹쳐지는 것은 어쩌면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을 닮은 위대한 창조력의 표현인지 모른다. 인간은 하느님의 선물인 손을 도구삼아 여러 좋은 일을 할 수 있기에 인간의 손이 바로 대성당의 상징일 수 있다.
“예술이란 인내와 정성을 요구하는 것이며, 노동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라는 그의 신념이 이 작품을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