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하늘의 표징 중의 표징, 기적 중의 기적이 회개일 겁니다.
다른 무엇보다 회개하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것이니만큼 하느님의 역사하심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질이 개 같고 누구의 말도 좀처럼 듣지 않던 사람이 바뀌면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주님께서 회개의 예로 드신 요나의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그 힘든 회개를 인간은 어떻게 하게 되고
그것을 왜 기적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프란치스코는 죽기 전 유언을 남기면서 자기 회개에 대해 얘기하는데
자기가 회개를 시작하도록 주님께서 해주셨다고 얘기합니다.
회개는 인간이 해야 하는 거고, 자기가 해야 하는 것인데
주님께서 시작을 하게 해주셨다는 얘기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느님께서 하게 하시지 않았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너 회개해!’ 이렇게 명령해서 시작했다는 겁니까?
사람에 따라 혹 꿈이나 환시를 통해 그리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삶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삶 중에서도 연속되는 실패의 삶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자기 욕심을 이루려고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될 때
그래서 엄청난 고생을 하고 고통과 좌절을 겪고 난 뒤
그때 하느님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고 말씀을 듣게 되지요.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상황과 같습니다.
진퇴양난이라고 하지요.
앞으로 가도 죽고 뒤로 돌아가도 죽거나,
이 세상에서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됩니다.
말하자면 자기의 한계체험이고, 인간의 한계체험을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한계체험을 할 때 한계너머의 세계를 보게 되고 체험케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의 불이 밝으면 하늘의 별을 보지 못하고 보지 않듯이
이 세상에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으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려들지만
그렇게 안 될 때 인간은 비로소 다른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우선 자기 힘이 아닌 하느님의 힘을 찾게 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란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리도 가보고 저리도 가보다가 안 되자 이젠 하늘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개인의 한계체험만 해서는 안 되고
개인의 한계체험이 인간의 한계체험으로 이어져야 하고,
인간의 한계체험이 하느님 체험으로 넘어가는, 곧 초월이 일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