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길을 가다가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을 합니다.
우리도 자주 불평을 하고 그러면서 불평을 하지 말아야지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자주 생각하지만 자주
아니 거의 매번 실패하고 맙니다.
왜 거의 매번 실패하겠습니까?
그것은 원인은 내버려둔 채 미봉책으로 입만 봉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병이나 종기를 원인치료하지 않고 임시처방만 하면
잠시 증세를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결국 병이 악화되듯이
불평도 원인은 놔두고 입만 막으면 결국 입으로 터져 나오게 되지요.
그러면 불평의 근본원인은 무엇입니까?
불평불만不平不滿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제 생각에 불평불만보다는 불만불평이라고 함이 맞습니다.
불만이 불평의 원인이고 그러므로 안에 있는 불만을
겉으로 토해내는 것이 불평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화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화가 나 있는데 화를 내지 않으려고 누르지만
누르고 누르다 화가 대폭발하거나 화병에 걸리지요.
그러니 이미 화가 났으면 건전한 방법으로 화풀이를 잘 해야 하고,
더 근원적으로 화가 나지 않도록 화의 원인제거를 하는 것, 곧
화의 뿌리인 ‘내 원하는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화를 잘 관리하는 거지요.
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대로 둔 채
화가 나지 않기를 바라서는 안 되고,
이미 화가 났는데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불평의 원인인 불만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왜 불만하게 되는 것인가요?
만족이 욕구만족이듯이 만족의 반대인 불만도 욕구의 불만이지요.
욕구의 문제라는 얘깁니다.
욕구가 불평의 원인의 원인, 곧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얘기이고,
그러니 욕구가 없다면 불만도 없을 것이며
욕구가 작다면 채우는 것이 쉬우니 불만이 있더라도 많지 않을 겁니다.
욕구가 클수록 불만이 커질 것이요,
욕구가 욕망이나 욕심으로 확대되면 불만은 그만큼 커질 뿐 아니라
한층 복잡해지고 해소하기가 힘들게 될 것입니다.
오늘 탈출기 얘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이 끝이 없습니다.
이 말은 욕구가 끝이 없다는 얘기이고,
하느님께서 불평을 들어주셔도 또 불만이고 또 불평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십니다.
죽음이라는 최악을 극약처방하시는 겁니다.
죽게 되면 살 수만 있어도 감지덕지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 아닙니까?
그래서 죽게 되면 모든 불평은 입에서 사라집니다.
죽음이라는 절대 절명의 상태에서 다른 욕구는 사치스러운 것이고,
생명의 욕구 앞에서 다른 욕구는 우스운 것이 됩니다.
그러니 제가 자주 얘기하듯 불평이란 살만하니까 하는 겁니다.
오늘까지 살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살만하니까 불평불만이 더 많은 저를 부끄러워하며 반성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