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주님께서는 오늘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내 속에 담긴 것, 내 안에 있는 것은 무얼까 생각해봤습니다.
속이나 안, 곧 내면에 있는 것은 대략 이렇게 구별될 것입니다.
의지로 치면 선의이거나 악의이고,
생각으로 치면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이며
감정으로 치면 나쁜 감정이거나 좋은 감정이고,
정신으로 치면 육의 정신이거나 기도와 헌신의 정신일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구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사랑인가, 욕망인가.
물론 내 안에 있는 것이 사랑인가, 미움인가,
사랑인가, 무관심인가, 이런 구별도 가능하지만
사랑과 욕망으로 구별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랑과 욕망은 어떻게 구별되는 겁니까?
그것은 충만과 결핍의 관계이고 그런 구별입니다.
사랑의 충만이 없을 때 욕망이 가득하게 되지요.
왜냐면 욕망은 결핍을 채우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잖습니까?
배부른 사람에게 무슨 식욕이 있겠습니까?
배고픈 사람에게 식욕이 있고 배고플수록 욕구가 댕기는 거 아닙니까?
반대로 욕구가 있고 욕구가 욕망과 욕심으로 발전할 때
사랑이 있을 자리가 없지요.
그래서 사랑이 우리 안에 자리하기 위해 욕망을 버리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도 하고 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욕망과 욕심은 버리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대부분 실패합니다.
그러니 욕망과 욕심을 버린 다음 사랑이 들어차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그 전에 그러니까 욕구가 욕망과 욕심으로 발전하기 전에
욕구를 사랑으로 바꿔야 합니다.
욕구는 결핍의 존재에게 어쩌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는데
욕구는 그러나 얼마든지 사랑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식욕과 식탐을 가지고 한 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인간인 이상 식욕이 없을 수 없고, 없어서도 안 되겠지요.
그러나 식욕과 식탐은 거의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식욕은 유한한 인간의 조건일 뿐이지만
식탐은 유한한 인간이 조건에 굴욕적으로 굴복하고
더 나아가 사랑이 들어올 수 없도록 욕망과 욕심에 자기를 포기한 것이지요.
그러니 욕구 단계에서 빨리 욕구를 사랑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식욕이 댕길 때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먹음으로써
거기에서 오는 만족으로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지만
음식에 대한 욕구를 하느님 사랑에 대한 욕구로 바꿈으로써
욕구가 욕망이 아니라 갈망이 되고 사랑이 되게 할 수도 있지요.
우리는 겉의 손을 씻는 것보다 이렇게 안에 있는 욕망과 욕심을
사랑으로 바꾸는 내면 씻기가 진정한 정결례라고 믿어야 하겠고
이미 들어찬 욕망과 욕심을 씻어내는 정결례보다
욕구 단계에서 사랑이 차게 하거나 한 걸을 더 나아가
아예 사랑으로 욕망이나 욕심이 자리할 수 없게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