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하느님 나라는 누룩과 같다.”
하느님의 나라란 어떤 나라입니까?
하느님이 임금이신 나라를 말합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임금이시니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하느님 나라는 공간적으로 이 세상이 아닌
죽고 난 뒤 저 세상에서야 이루어지는 나라인가요?
결코 그럴 리 없습니다.
죽고 난 뒤 저 세상에서 완성이 되겠지만
이 세상에서 꿈도 꾸지 못할 나라는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셨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으며,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시며 그 이유는 지금 현재적으로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도 그리고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도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오늘 비유는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로 자기 정원에 겨자씨를 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겨자씨를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겨자씨를 심는데 남의 정원이 아니라 자기 정원에 심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겨자씨는 무엇이고 자기 정원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기 마음에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큰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작은 성전을 세우고
자기 가정이 성가정이 되고 작은 성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의 사업이랍시고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
하느님의 사업이라고 할지라도 큰 성공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그저 작은 사랑을 실천하려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꿍꿍이속>이라는 말이 있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다른 마음속의 목표나 계획을 말하는 것이지요.
마음속에 하느님의 뜻이나 계획이 있지 않고
실은 자기의 뜻을 성취하려는 계획이 있는데
그것도 성공주의와 거대주의적인 계획입니다.
그러니 겨자씨를 자기 정원에 심는 것은 이런 꿍꿍이속이 없이
진정 하느님 뜻을 마음에 두고 작은 사랑의 실천을 계획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 작은 사랑의 실천이 큰 결실을 맺게 하십니다.
두 번째는 밀가루 반죽 속에 누룩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다.”
겨자씨 비유가 내 안에 작지만 거룩한 뜻과 계획을 지니는 것이라면
누룩의 비유는 내가 어떤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누룩 역할을 하는 겁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를 반성을 한다면 이런 것입니다.
제가 공동체 수호자/원장인데 제가 밖의 활동을 많이 하기보다는
집안의 어머니처럼 제가 안에서 형제들의 내조를 잘하였다면 형제들이
복음화 활동을 잘 했을 거고 더 큰 열매를 거뒀을 텐데 하는 점입니다.
사실 이 말은 제가 관구봉사자일 때 공동체 수호자들에게 자주 한 말인데
비록 관구에서 제게 다른 소임을 너무 많이 맡긴 이유도 있지만
아무튼 저는 형제들의 내조를 잘 하지 못하고 밖으로 너무 나돌았습니다.
누룩이 된다는 것은 형제회면 형제회, 레지오면 레지오 단체에 들어가
겸손하게 내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