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이런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시고 병자들을 치유하셨다.
그리고 제자들도 가까이 부르시어 당신과 같은 일을 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셨다.”
그러니 오늘의 우리도 주님이 하신 것을
오늘 이 땅에서 재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자문을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2천 년 전에 이스라엘에 오신 것처럼
이제 이 한국 땅에 오시면 무엇을 하실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재현해야 할까?
잘 아시다시피 주님께서는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른 것을 하지 않으시고 똑같은 일을 하실 겁니다.
한 마디로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선포하실 텐데 그것을 굳이 나누면
-기도하시고
-가르치시고
-치유하시는 것이고 이것이 주님의 일상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우리도 다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 할 수 없어서 하나만 한다면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저는 엉뚱하게 이런 생각을 오늘 했습니다.
저를 위해서는 기도를 해야 할 것이고
다른 이를 위해서는 찾아가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이를 위해 제가 할 것이 왜 가르치거나 치유하는 것이 아닌
찾아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느냐 하면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찾아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가르치는 것 잘 하지 못하고
병자의 치유는 더더욱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것보다는 찾아가는 것을 잘 해야겠지만
설사 제가 두 가지를 다 잘 할 수 있다 하더라고
찾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찾아가는 것을 할 것입니다.
며칠 전 얘기했듯이 어린이에게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은 엄마이고,
어린이에게 가장 큰 불행은 병이나 배우지 못함이 아니라 엄마의 부재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은
하느님의 가르침과 치유보다도 하느님의 현존 그 자체입니다.
하여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셔서 가르치고 고쳐주시는 것보다 찾아오심,
그 자체이고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도 그래서 찾아감, 그것이지요.
더욱이 오늘 주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인 군중을 보시고 가엾어 하시며
제자들에게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길 잃은 양에게는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우선입니다.
길 잃고 헤매다 지치고 다쳤어도 찾고 난 뒤에야
먹을 것을 주고 다친 것도 고쳐줄 수 있는 것이니
찾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우선입니다.
그래서 먹여주고 고쳐주는 것은 능력이지만
찾아가는 것은 사랑임을 그리고
이 사랑이 능력이나 기술보다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