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신부를 차지할 신랑이라고 표현합니다.
구약에서 하느님께서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의 신랑인 것처럼,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부인 교회의 신랑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자신을 그 신랑의 친구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복음은
신랑 친구의 기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랑이 곧 올 것이기 때문에,
혼인 잔치가 곧 시작될 것이기 때문에,
신랑 친구는 신부를 단장시키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신랑이 아닌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아쉬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그 신랑의 친구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광야에서의 힘든 삶도
자신의 몫으로 잘 받아들입니다.
요한은 신부를 단장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도 신랑을 맞이할 신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혼인 잔치의 주인공이 신랑과 신부라면,
신랑을 맞이하는 다른 모든 사람은
신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요한도 하느님의 구원이 필요한 한 인간이고,
그렇게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인 것입니다.
구원이 필요한 존재.
우리는 우리가 지닌 나약함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물론 내가 지닌 나약함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의 나약함을 채워 줄 누군가가 있다면,
넘치는 사랑으로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고도 남을
그런 사랑이 있다면,
나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부족한 부분이 많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더 많이 채워주시는 더 큰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한은 자신이 신랑이 아니어도,
자신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채워 주지 못해도
아쉬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준비시키는 것을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기쁘게 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에
우리 각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나약함을 채워주시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의 나약함을 채워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나약함을 감추는 것에서
그것을 드러내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회개이며,
그것이 진심어린 우리의 준비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