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이미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돌계집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의 얘기이고,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에 의해서 태어난 사람들의 얘기이며,
이스라엘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봉헌된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탄생이 인간이 아닌 하느님에 의한 것이고,
그 목적은 인간적인 목적이 아니라 인류구원을 위한 것임을
믿게 하기 위해 이들이 돌계집에게서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과 요한만 하느님에 의해서 태어난 것입니까?
우리 모두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된 존재들이 아닌가요?
그럼에도 왜 삼손과 세례자 요한만 하느님에 의해
뱃속에서부터 창조되고 탄생한 것처럼 얘기합니까?
그리고 삼손과 요한만 태중에서 바쳐진 존재인가요?
물론 우리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따라서 우리의 출생도 부모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이며
그래서 우리도 태중에서부터 바쳐진 존재이어야 하지요.
문제는 믿는다는 우리도 때때로 그렇다는 것을 놓치고,
믿지 않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의사를 통해 보통 치유를 받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의사가 치유를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의사를 통해 치유하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치유자와 하느님이 따로따로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치유는 의사가 치유했다고 생각하다가
의사가 치유할 수 없는 것이 치유될 때 하느님이 치유자임을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아주 신심깊은 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진찰을 할 때 항상 기도를 하고
치유나 특히 수술을 할 때는 더 간절하게 기도를 하며
그렇게 해서 치유가 되고 나면 하느님이 낳게 하신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주 유능하고 유명한 사람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증언을 믿고 하느님이 치유자이심을 믿습니다.
우리 신앙인이 바로 이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삼손과 요한만 하느님에 의해서 태어나고
보편적인 구원을 위해 봉헌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도 하느님에 의해서 태어나고
보편적인 구원을 위해 봉헌된 존재임을 믿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한 신앙인이라면 이것을 믿어야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구원을 위해 자신을 봉헌해야겠지요.
그러니 삼손과 요한만 나지르인이 아니고,
우리도 또 다른 나지르인들임을 믿고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새삼 깨닫고 그렇게 살기로 다짐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신부님 잘 다녀 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