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오늘 저는 독서와 복음을 읽고 두 독서의 공통주제로 이것을 삼았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옳은 일 vs 하느님이나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사랑의 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일 vs 하느님이나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좋은 일.
오늘 사무엘기는 사무엘이 사울이 한 일에 대해 나무라는 얘기입니다.
적들은 물론 전리품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없애 버리라고 했는데
사울이 번제물로 바칠 양과 소는 따로 챙겨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너는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일이라고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단식하는 바리사이와 요한의 제자들을 보며
주님의 제자들은 왜 단식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신랑의 혼인 잔치가 벌어졌는데 웬 단식이냐고 오히려 반박하십니다.
번제물 바치려는 것을 사울은 옳은 일 또는 좋은 일 하는 거라 생각했고
우리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느님은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고 사울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번제물 바치는 것 그 자체는 옳고 좋은 일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문제는 그 일을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기에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의무를 다 했다는 나의 만족감을 위해서 한다거나
내가 승리했음을 하느님께 뻐기기 위해서 한다면 그것이 문제인 거지요.
어린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상을 타 가지고 왔는데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한 것과 자랑하고 싶어서 한 것의 차이지요.
단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하는 단식이 얼마든지 많지요.
건강을 위한 단식이나 미용을 위한 단식도 있고,
금욕의 실천이라는 꽤나 고상하고 숭고한 단식,
그러나 속을 뜯어보면 결국 자기만족인 단식도 있으며,
하느님을 위해 힘든 것을 해냈다는 자기만족적인 단식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사무엘기의 하느님과 복음의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번제물을 바치고 단식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건 그것이 사랑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어느 상황에서는 사랑을 위해 맛있게 잘 먹어줘야 합니다.
어머니가 온갖 정성을 다해 차린 밥상은 맛있게 잘 먹어줘야 합니다.
잔칫집에 가서는 축하한다고 떠들기도 하고 술도 마셔줘야 합니다.
잔칫집에 가서 하느님 사랑 때문에 단식을 한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 사랑도 아니고 이웃 사랑도 아니며 어쩌면 죄입니다.
사실 사랑이 아니면 죄입니다.
남에게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죄라고 보통 얘기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기준으로 하면 그 무엇이 사랑이 아니면 죄입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새 포도주와 새 부대입니다.
옛날에는 포도주를 먹고 안 먹는 기준이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포도주를 먹어도 사랑이고 안 먹어도 사랑입니다.
포도주는 똑같은 포도주인데
사랑으로 마시기 시작하니 포도주가 새 포도주입니다.
아주 맛이 다릅니다.
이런 새 포도주의 맛을 고리타분한 옛날 기준으로 가두려 해서는 안 됩니다.
맛의 기준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랑 없이 먹고 마시니 맛이 다 하나도 없다!
사랑으로 마시니 다 맛있다!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