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몇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왔는데
그 멀리 찾아와서 하는 짓이 고작
손을 씻고 먹나 안 씻고 먹나나 따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의 우리가 보기에는 한심한 짓이지만
이들이 그렇게 따지는 걸 보면 그만큼 중요한 거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도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하고 성찰도 해야 합니다.
곧, 우리도 별로 중요치 않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정하신 것은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사람이 정한 것, 그중에서도 내가 정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지는 않는지.
어제 이곳에 와서 두 번째 수도원 회의를 하며 지난 한 달의 삶을
성찰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저는 이런 나눔을 했습니다.
재작년과 작년 저는 나름대로 위기의 시기를 지났다고 생각되는데
다름 아니라 지금 생각하기에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제가 갈수록 완고해지고 쪼잔해지고 옹졸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큰 것을 가지고 고집부리지 않고
작은 것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는 거였는데
우리는 큰 것,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고집이 있어야 하고
작은 것, 중요치 않은 것은 고집부리지 말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더 문제는 제가 그런 것 그리고 그렇게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알면서도 계속 큰 것을 놓치고 별거 아닌 것을
고집 부리는 쪽으로 가고 있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되는 걸까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었는데
처음에는 ‘내 성찰의 시간이 부족해서야!’ 그리고 그것은
‘내 탓이 아니라 내가 맡은 일이 너무 많아서야!’라고
그리고 소임을 많이 줬기에 이렇게 된 거라고 이유를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지금 참으로 어리석어서, 지혜 없어서 그런 거라고도 생각했지만
차츰 더 생각하니 결국 사랑이 없기에 그리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사람이 보이지만
사랑이 없으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사람이 만든 규정이나 관습이나 전통이 보이고,
사랑이 있으면 사랑 외에는 아무 것도 애착치 않고
모든 것에 너그럽고 융통성이 있지만
사랑이 없으면 규정이나 관습이나 전통에 집착하고,
그리고 집착執着하기에 고집固執을 부리게 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인간소외와 배제만이 아닙니다.
법과 규정에의 집착과 인간의 관습과 전통에의 집착은
그 자체가 비인격성이기 때문에 모든 인격적 관계의
단절과 배제를 가져와 하느님까지 소외시키고 배제시킵니다.
집착과 애착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애착이 애착하는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집착도 집착하는 그것 외에는 다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는데
집착이 비인격적 집착이기에 집착하는 일이나 사물 외에는
인간도 하느님도 다 소외시키고 배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바리사이와 다르지 않다면
우리에게도 이렇게 일갈하실 겁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