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온 누리에 평화가 오기를...
가끔 가슴이 먹먹해지면,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란 싯귀절이 떠오른다.
지금 한창 열기가 더해가는 평창 올림픽을 대하면서도, 마음 속 깊이 살어름판을 걷는 듯한 심정은
나 만이 지니는 그런 느낌은 아닐게다. 올림픽 직후, 남북간 이 나라의 귀추가 어찌될지...사뭇 궁금해지는 거다. 하기사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평소 사람들이 지니는 걱정이나 염려는 90 몇 프로 이상이 실현 불가능이요 쓸데없는 기우라고 하지 않는가.
곧잘 불안하기 짝이없는 현 시국을 걱정하면서, 습관처럼 매일 오르는 인왕산 길을 걷노라니 좀처럼 가실 줄 모르는 한파의 냉기가 뺨을 때린다. 그리고는 거의 같은 길, 장소를 지나치면서 막닥뜨리는 똑같은 바위들하며 나무들을 대하면서도, 내 심성이 그래서인지 늘 새로운 만남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얼마 전 눈이 내린 직후였다. 성곽길을 따라 걷노라니, 참새들 여러 마리가 눈 속을 헤집으며 뭔가를 열심히 쪼아먹느라 내 앞 길 코앞에서 비켜줄 줄을 모르는 거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휘- 쫒아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어디 그럴 나인가? "얘들아, 미안하지만 길을 비켜주지 않으련?" 혼자 말을 중얼거려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럴 경우엔 내가 다른 길을 택하여 휘돌아 갈 밖에...덕분에 아주 가까이에서 휴데폰 카메라로 그들의 예쁜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겨울이면 유난히 손발이 시려운 나로서는, 참새들이나 강아지...들이 차가운 눈밭에서도 끄떡없이 잘 견디는 걸 보노라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성곽을 따라 휘돌아 걷다보면 어느 지점에선가 양지바른 곳에 매년 이른 봄이면 제일 먼저 피는 여린 풀꽃이 있다. 그 정확한 이름은 식물 도감을 찾아보면 알 수 있겠지만, 아직도 이름은 모른 채 입추가 좀 지나면 어김없이 그자리에 피곤하여, 이맘때면 고대하는 눈길을 주곤 한다. 계속되는 영하 십 몇도를 오르내리는 한파 속에서도 봄은 여지없이 여기저기 마련하고 있으니, 바람을 적당히 맞으며 듬뿍 해바라기를 할 수 있는 장소의 풀잎들은, 신기하게도 진작부터 그 생명의 빛갈이 다름을 눈여겨볼 수가 있다. 참새들에게 말을 건네듯이, 풀잎에게도 다정하게 말을 걸으며 살짝 쓰다듬어 주면 분명 그 응답의 소리가 들려온다. "맛..님, 며칠만 지나면 저희 꽃들, 인사를 하게 되지요. 늘 관심을 써주시어 반갑고 고마워요!".
그렇다. 빼앗겼던 들에 봄이 왔듯이, 어김없이 해빙기가 되면 봄이 오고 남북간에도 해빙의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나리라 확신한다. 얼마나 많은 마음들과 이산 형제 자매들이 오랜 아픔을 딛고 평화의 그 날이 오기를 갈망하고 기도하고 있는가. 반듯이 하느님과 자연의 섭리대로 따뜻한 봄이 오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