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우리는 세 가지 독서를 읽었습니다.
사순 시기는 하느님께 돌아가는 시기라는 뜻으로 1독서를 읽었고,
사순 시기는 회개의 때이고 그래서 은총의 때라는 뜻으로 2독서를 읽었으며,
사순 시기는 회개의 표시로 단식과 기도와 자선을 하라는
사순 시기 3대 실천에 대한 말씀을 복음으로 읽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탕자처럼 아버지를 떠나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떠나 있으니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말씀이다.
왜냐면 나는 주님을 떠난 적이 없을뿐더러
지금은 전보다 더 주님을 떠나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생각만 그렇게 할뿐 실제로는 떠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사순시기를 시작하며 나는 어디에 있는지부터 성찰해야 했습니다.
성찰의 결과는 명확하게 이렇습니다.
나는 지금 양다리 걸치기를 하고 있다.
한 발은 주님께 담그고 있고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담그고 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어려울 때와 필요한 것을 위해서는 부모를 떠날 수가 없지만
사랑은 여자에게 가 있는 사람처럼
어려움에 처할 때는 하느님을 찾지만 모든 것이 여여할 때는
세상을 즐기고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어울린다.
이것이 성인들과 우리의 차이다.
성인들은 두 발을 다 하느님께 담그고 있다.
도움도 하느님께 받고 사랑도 늘 하느님께 가 있다.
그런데 나는 하느님 사랑을 필요로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고
필요한 것만 취하고 사랑은 달리 하는 것이 전형적인 이기주의자이다.
그러므로 오늘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그리고
성인들이 한 것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는 이 이기주의에서 돌아서야 하고,
생각만 하느님께 있고 마음은 딴 데 있는 이 양다리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첫째 독서 요엘서는 이렇게 호소합니다.
“이제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어라.”
그런데 이번 사순시기 그렇게 하겠는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사랑에는 <의지의 사랑>이 있고 <은총의 사랑>이 있습니다.
당장 그렇게 살 수는 없어도 의지적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의지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의지만으로 우리 입맛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지 않으며
그래서 의지만으로 세상 사랑이 하느님 사랑으로 바뀌지 않고
그래서 인간의 사랑의지와 하느님의 은총이 결합을 해야 하며
그래서 저는 지금 당장은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께 돌아가지 못해도
미래에 그렇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성인과 저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성인들은 진작 이런 사랑에 도달했지만 저는 늦게 도달하는 겁니다.
젊었을 때 맛있던 음식들이 하나하나 맛을 잃고
더 나이를 먹으면 목구멍에 삼키는 것조차 힘들어지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랑 입맛도 나이와 함께 바꿔주시리라
믿고서 용기를 내어 출발하는 오늘 사순절의 첫 날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안에서 의지적 사랑을 날마다 노력하는 사순의 길을 함께 갈 수 있기를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