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자비의 말이 있고,
사람을 억압하는 구속의 말이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세리를 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아가
예수님도 그들을 죄인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똑같이 죄인이라고 부르지만,
누구의 말은 자비의 말이 되고
누구의 말은 구속의 말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의 말은,
너희는 죄인이기 때문에
너희는 구원에서 멀다고 하는 판단의 말이지만,
예수님의 말은
너희는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이 필요한 이들,
그래서 구원으로 더 가까이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포용의 말입니다.
즉 판단과 내침은 사람을 죽이는 구속의 말이지만,
포용과 수용은 사람을 살리는 자비의 말입니다.
한편, 반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누군가 나를 죄인이라고 부른다면
기분 좋을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스스로를 바라볼 때에도,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잘못을 저질렀음을 받아들일 때,
누군가 나를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에게 상처로만 다가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잘못에서 돌아서서
하느님께로 다시 다가올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단어 단어에 너무 집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단어를 통해 뜻이 전달되기는 하지만,
단어에 사로잡혀 그 안에 있는 진심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죄인'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단어를 말하는 사람도 수용의 의미로 사용하고
듣는 사람도 자기 인정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부정적인 단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저 사람이 말하고 있는 그 마음과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나의 마음이
어떤 모습인지 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