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첫 주일인 오늘 독서들은 사순시기 전체의 의미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요약하는 말씀이 2독서의 다음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육적인 것이 죽음으로써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
뒤집어 얘기하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육적인 것이 죽는 것, 이것이
세례의 삶이고 사순 시기의 수난을 통해 부활로 넘어가는 우리의 삶이지요.
그러니까 육과 죽음-영과 생명의 치열한 대결이 사순시기 우리의 과제이고,
이 대결을 먼저 치루시고 우리에게 모범으로 주신 것이
바로 오늘 주님께서 광야에서 겪으신 유혹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십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는 죄 외에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아지셔야 했고,
그래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까지 당하셨으며(히브 2,17과 4,15참조)
유혹을 당하는 우리를 이해하고 도우실 수 있다(2,18참조)고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다름 아닌 바로 우리시라는 얘기인데
이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시고 영대 영의 대결을 오늘 벌이시는 겁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유혹은 항상 우리의 연약함과 욕망을 미끼삼아 유혹을 하지만
유혹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단련과 사랑을 선택하게도 합니다.
단련을 선택함으로써 육적인 연약함이 영적인 강함으로 다시 태어나고
사랑을 선택함으로써 욕망을 하느님께 대한 갈망과 열망으로 바꿉니다.
제가 단련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사실은 선택한 시련이 단련인 것이고 시련을 선택하여
자신을 단련하기로 마음을 먹게 하는 것이 바로 Spirit(정신/영)입니다.
정신력이 강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정신력이 약하면 아무도
시련을 단련의 기회로 선택하지 않고 그저 편함과 욕망에 안주합니다.
정신력이 약한 사람은 또한 고통을 너무도 싫어하여 조그만 고통도
두려워하고 악령은 두려움을 이용하여 이런 사람을 먹잇감 삼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과 악령에 사로잡히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영이 약한 사람은 또한 고통이 두려워 사랑을 선택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희생, 자기의 죽음, 고통을 무릅써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사랑은 정신/영으로 하는 것이지 감성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수난의 사랑은 고통을 두려워하고 감성의 사랑밖에 못하는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랑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처럼 광야로 나감은 정신력 강화를 위한 것입니다.
군대에서 담력과 생존능력을 키우기 위해 아무 것도 주지 않고 그리고
아무도 없이 혼자 야전에서 일주일 또는 그 이상을 살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정신력 또는 영적인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주님처럼 광야에 가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광야에 가는 것이 무모함도 아니고 인간적인 것도 아니려면
역시 주님처럼 성령에 이끌려 가야하고 성령과 함께 가야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성령에 의해 광야에 가십니다.
주님께서도 성령에 의해 광야에 가고 성령과 함께 악령과 대결하셨는데
우리가 주님보다 더 영적인 힘이 센 존재인양 굴었다가는 백전백패입니다.
악령과 대결하려는 우리의 정신자세가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고 그래서
성령의 힘으로 무장이 될 때 우리는 악령과 싸울 기초체력을 지니게 되고,
성령과 싸움을 통해서 영적인 힘은 더욱 단련이 되고 강화되어
이제 어떤 영과 대결해도 이길 수 있고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수난의 사랑의 소유자, Passion의 소유자가 되는 겁니다.
이번 사순시기를 통하여 심령이 강한 사람, 그래서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무릅쓰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더욱 후기까지 달아주시니 그
자상하심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설날 떡국 많히 드시었는지오!
사순시기를 잘 견디어 내시기위해서...
주님께서 사부님의 전구로
육신의건강은 물론 영적 은총 주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