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비유를 드시며
이렇게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비유는 이렇습니다.
소작인들이 주인의 포도밭을 차지하기 위해
일꾼들과 주인의 아들마저 죽였는데 이것은
하느님 소유인 이스라엘이라는 포도밭을
백성의 원로들과 수석사제들이 강탈하려고
예언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마저 살해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뺏길 분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에게서
하느님 나라를 빼앗아 소작을 잘 내는 다른 민족에게 주신다는 비유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소작을 잘 낸다는 것이 무엇인가?
선교를 열심히 하여 신자들의 하느님 믿는 이들 숫자를 늘리는 것인가?
틀린 말이 아닐 것 같은데 그러면 당시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하느님을 믿는 유대교 신자들의 수를 줄어들게 하였다는 뜻이겠습니까?
하느님을 믿는 유대교 신자들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을 겁니다.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 내용의 문제였을 겁니다.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이스라엘의 종교와 정치,
두 세계를 좌우하는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제정일치사회에서 두 분야를 대표하는 세력인데
이들이 하느님을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통속이 되어
백성과 신자들을 오도하여 자기들 소유로 만든다는 겁니다.
요즘도 사이비 종교가들은 하느님을 얘기하고 믿게 하지만
실은 자기들을 믿게 하고 자기 하수인으로 만드는데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바로 이 사이비 종교인들과 같으며 하느님은
이들의 이 신앙 오도와 하느님 나라 강탈을 결코 용납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소작을 잘 내는 것은 진정 무엇이고,
소작을 잘 내는 민족에게 하느님 나라를 주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소작을 잘 내는 것은 진정 백성들이 하느님을 믿게 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믿게 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진정 사랑케 하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교회와 정치지도자들이 소작을 잘 내게 하는 것은
백성들이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고 사랑하게 하는 것인데
하느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은 무서움의 하느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느님이심을 믿고 그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라고.
오늘 비유에서 소작인들은 아들을 상속자라고 하며
그 상속자를 죽이고 그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고 하고,
창세기에서는 요셉의 형제들이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요셉을 시기질투 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상속자인 아들을 죽인다고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없고,
동생을 죽인다고 아버지의 사랑을 자기들에게 돌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욕심으로는 안 되고 사랑으로 되는 것이고,
예수님과 요셉처럼 사랑 받고 사랑하는 아들이 되면 됩니다.
사랑은 사랑으로만 차지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랑 받는 사람을
질투하고, 미워하고, 제거한다고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상속자 아드님께서 친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도 당신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라고,
그리고 로마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분은...두려움에 빠트리는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