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다보면
상대방을 닮아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즐겨 먹는 것을 같이 먹고
그가 하는 행동을 흉내내기도 합니다.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함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좋고,
그래서 그것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함께 함이란,
기쁜 일이나 행복한 시간 만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렵고 힘든 시간에
더 함께 하려고 합니다.
내 앞에 닥친 것이 힘든 일일지라도
함께 한다면
그 고비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밀알 하나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고,
자기 목숨을 미워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은,
희생하고 싶지 않고,
남을 위해 죽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살고 싶지, 죽고 싶지 않습니다.
죽는 것은 지금 잠깐이지만,
그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죽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이야기 해도,
죽고 싶지 않습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삶을 지향하는 인간의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사랑이라는 콩깍지가 눈에 끼고 나면,
그 죽음은 더 이상 힘든 것도 아니고
두려운 것이 아닌 것으로 바뀝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죽음보다 더 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희생이라는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함께 하는 것,
주님과의 관계일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사랑에 앞서
그 사람의 약점을 더 보게 되고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여러 이유를 찾기도 합니다.
어떤 관계에 있어서는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게 생각됩니다.
오히려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그런 상황에 대해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실만큼,
우리를 위해 우리와 같아지려 인간이 되시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그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약해서 넘어져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안에 약점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더 큰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그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에 머무를 때,
우리도 우리 각자의 약함을 끌어 안을 수 있고,
그렇게 다른 사람의 약함을 끌어 안으면서
너를 위한 죽음의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순 시기가 2주 남았습니다.
남은 2주 동안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복된 시간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