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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선


부활 제 2주일 하느님 자비 주일을 맞이 하면서 지난 주에 있었던 정동 부활 성야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지난 3월 31일에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성당에서 관구봉사자 호명환 가롤로 형제의 주례로 부활 성야 미사가 있었습니다.


관구봉사자 형제의 강론을 전해드리며 


부활은 단순히 우리가 바라보는 사건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으로, 부활의 열매가 하느님 자비로 드러나길 기도드립니다. 



관구봉사자의 강론 


평화를 빕니다.

부활 축하드립니다!


 오늘 저는 약간 엉뚱한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할까 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미국에서 온 어떤 신부님으로부터 책을 여러 권 선물 받았는데 그 중 한 권의 책과 그 내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책의 제목이 이상해서 그 책을 그냥 책꽂이에 꽂아 놨다가 얼마 전에 호기심이 들어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한 3분의 2쯤 읽었나요... 아직 다 읽지 않아서 어떤 결론이 날지는 모릅니다만 지금까지 읽었던 내용에 대해서 생각하며 느낀 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은 “나환우 프란치스코”(Francis the Leper) 입니다. 이상한 제목이지요?! 그래서 이 책에 손이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용도 좀 이상하게 시작합니다. 프란치스코가 나환우였다는 것이고, 그의 오상도 나환우의 상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두 명의 저자가 함께 쓴 것인데, 한 사람은 프란치스칸 수녀회의 수녀이며 전문 간호사 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의사입니다. 이 책은 신앙과 의학, 신학과 과학의 관점에서 쓰인 책입니다. 물론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앞부분을 읽다가 하도 궁금해서 중간쯤을 펼쳐 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가 나환우였다는 사실을 강력히 주장한다.” 

 제가 그러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뭔가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는 분명히 교회 역사 안에서 처음으로 오상을 받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계속 제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조금씩 더 읽어가면서 그들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만약 그 주장이 옳다면 이것이 더 큰 기적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프란치스코의 오상이 참으로 예수님의 못자국과 같은 것이든 나병으로 인한 것이든 그것은 별 상관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프란치스코 자신이 돌보았던 사람들, 즉 자기가 함께 하고자 했던 그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이 됐다는 것이 바로 가장 큰 사랑이고, 가장 큰 기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지 더 낫지 못한 모습으로 혹은 더 부족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자신이 돌보았던 나환우들과 같은 모습을 취하게 되었다면, 저는 그것이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크나큰 은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의 전기 작가들은 프란치스코의 오상에 대해 기술하면서 심지어 손바닥 한 가운데 살이 못처럼 툭 튀어나왔다고 기술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 오상을 받는 것이 너무너무 고통스러워서 까무러칠 정도였고 전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런 오상을 가지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볼 때 또 누가 나환우가 되고 싶겠습니까? 프란치스코가 정말로 나병에 걸렸다면, 그는 자기가 사랑했던 그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을 묵상해보면서 이것 역시 정말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오상을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처럼, 즉 하느님처럼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핵심주제는 '같아짐' 입니다. 이 같아짐, 즉 동일화는 부활의 핵심적인 요소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으로서 그 동등한 위치를 보존하려 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똑같은 존재가 되시고, 노예의 신분까지 취하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미 성탄사건의 하느님의 인간되심 안에 부활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활은 어느 누군가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둔스 스코투스는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고자하는 원의를 하느님성 안에 이미 영원으로부터 가지고 계셨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되시고자 하셨던 그 하느님의 원의는 성탄사건을 통해 실현되었고, 심지어는 하느님께서 죽음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조건들을 다 취하심으로써 그 절정에 이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것이고 하느님의 원의이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미 부활을 전제하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조건을 취했다는 것이 어떻게 부활일까요? 내가 어떤 존재와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특히 내가 꺼려하는 존재, 내가 꺼려하는 사람들과 나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면, 그때 나는 그 사람도 사랑해 주시고, 그 사람과도 똑같아지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처럼 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느님처럼 된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는 부활 찬송을 불렀습니다. 근데 그 노래에서  아주 특별한 가사가 있습니다. '복된 탓'이라는. 사실 우리가 이 말을 복된 탓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본래는 복된 죄입니다. 언뜻 보면 죄를 찬양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죄를 찬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짊어지시고 죄인인 우리와 똑같은 죄인의 모습으로써 그 죄를 이기신 하느님의 사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 보다 "나는 더 나아." "나는 저 사람보다는 윤리적으로 괜찮아." 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집니다. 이것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에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도 많은 상황 속에서 세리처럼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같은 인간 조건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너 보다 더 나아."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저기서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 내가 꺼려하는 사람들, 내가 "저 사람은 안 돼!"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과 같은 인간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하느님성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셨던 같은 마음, 같이 되고자 하셨던 그 열정이 바로 그분과 우리의 부활을 가능케 했고 하느님께로부터 그 부활이라는 힘을 받게 했던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저 되살아난 사람에 대해서 놀라워하는 정도로 끝나는 그런 사건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살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전환하게 하는 그런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다른 이들과 같은 인간성,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같은 모습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서부터 특별한 힘이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묘하게도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역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승리의 역설인 것입니다. 우리는 처참하게 패배하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걸어놓고 매일 그분을 숭배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거기에 진정한 승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취하셨던 그 분, 우리와 똑같았던 그분 안에 진정한 승리에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저는 하느님의 육화 안에 이미 부활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같아지려 하거나 같은 상황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거기에서부터 부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죽고 나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내가 거쳐야할 그 육신의 죽음마저도 우리에게는 두려운 것이 되지 않는다는 강한 확신이 생깁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누구를 단죄하거나 판단하는 대신 그 사람의 고통과 죄를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십자가 사랑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된 부활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힘은 바로 우리 모두가 다 연결되어 있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나이며, 그래서 우리와 같아지시고자 하시는 하느님과도 하나라는 사실에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확실하게 믿으셨고 그래서 하느님의 힘이 당신께로 발휘된다는 것을 믿으셨기에 부활 하셔서,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 예수님, 그 하느님은 여러분으로서 저로서 존재하십니다. 우리의 죄와 고통을 나누시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과 똑같아 지고자 했던 그 큰 사랑을 가진 내가 있으니,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이후에도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신다는 점을 우리에게 확신시켜주십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자~ 보시오. 내가 살과 뼈가 있지 않습니까?! 이 손과 발의 상처를 보시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상처는 아물기는 하셨지만 없어지지 않는 흉터로 계속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상처와 더불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상처는 우리를 낫게 하는 약이 되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그분에게만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 치워놓지 맙시다. 그것을 그저 숭배하고 흠숭하는 정도로 끝나지 말고 나에게 일어나고 사건으로 받아들이도록 합시다! 우리 역시도 파스카의 여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 여정을 시작하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이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활을 살 것이고 언젠가는 진정한 부활 속에서 하느님과의 영원한 복락 속에 있게 될 것입니다.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내가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는 더 이상 꺼려하는 존재가 아닐 것입니다. 사랑의 존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여기서부터 그 사람과 같은 인간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고백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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