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든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며칠 전 저의 소신학교 동창들이 격려차 이곳을 다녀갔습니다.
당연히 왜 여기와 이런 삶을 사느냐는 질문이 나왔고,
조선족을 사목을 하러 왔냐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제 동창들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왜 제가 여기에 왔는지 궁금해 하시고,
제 동창들처럼 조선족 사목을 위해 왔을 거라고 생각하십니다만
제가 여기에 온 1차적인 목표랄까 이유는 저를 위해서입니다.
프란치스코가 생애 말년에 지금까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시피 하니 이제 다시 시작하자고 형제들에게 얘기한 것처럼
저도 지금까지 프란치스칸 삶의 핵심인 작음과 낮음의 삶을 살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사는 노력이나 하고 시늉이나 하려고 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작음과 낮음의 삶을 살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이곳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조선족이 많은 이곳 가리봉 동에서 하느냐고 물으면
제 두 번째 목적이 중국선교 특히 재중 동포선교이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중국선교를 위해 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는데
어느 날, ‘이곳에 와 있는 많은 재중 동포를 놔두고
왜 선교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 가서 어렵게 선교를 하려 할까?’
이런 반성이랄까 깨달음이랄까 하는 것이 왔고 사명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분들을 만나거나 생각할 때마다 제 마음이 참 안쓰럽습니다.
조선족이라고도 하는 우리 재중동포들은 과거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갔거나
독립운동을 하러 중국에 간 분들의 후손들이 대부분인데
이분들은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의 불행한 역사의 최대 희생자들입니다.
조상들이 독립운동을 하느라 재산을 다 날리고 가족도 돌보지 못했기에
숱한 고생을 하였는데 그 희생 덕분에 우리는 해방된 나라에서 잘 살지만
이들은 다른 민족 가운데 소수 민족으로 살면서 온갖 설움을 겪으며 살고,
지금 여러 이유로 한국에 왔지만 대접 받아야 마땅한데 차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교의 이유 때문에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국을 돌아다녔지만
늘 민족적인 부채감을 이들에게 느꼈고 그래서 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흩어지고 이곳에 온 뜻을 하느님 안에서 찾고자 하는 겁니다.
박해로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민족 가운데로 흩어진 사람들이
사실은 그리스도교를 다른 민족들 가운데 흩뿌린 것이 된 것처럼
우리 재중동포나 고려인과 탈북자들도 그런 선교사가 될 수 있지요.
이들의 상당수가 돈을 벌려고 왔지만 우리는
이들이 돈만 벌어가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얻어 가게하고,
그중의 얼마는 중국으로 돌아가 선교사가 되도록 양성해야 합니다.
중국말을 모르고 비자도 받기 어려운 우리가 가서 억지로 선교하는 것보다
우리말, 중국말을 둘 다 잘하는, 여기 와있는 이들을 선교사로 키우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선교방법이고 이것이 이 시대의 뜻이며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민족적으로 이분들을 고맙게 여기고 소중히 대할 뿐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우리 대신 선교해야 할 분들로 고맙게 여기고
선교의 소중한 자원으로 양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선교는 보편 성소라는 점을 저는 몇 년 전부터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별 성소인 해외선교사만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선교사란 뜻이고
꼭 나가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곳에서부터 해야 한다는 뜻인데
우리가 있는 곳에서 선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이분들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는 오늘이 되기를 빕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道이 있다는 그 길이 쭈욱 드넓은 대륙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