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원수란 무엇이고, 누구인가?
나한테 어찌어찌 해서 나를 아프게 하고
무엇보다도 불행하게 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그런 사람을 오늘 주님께서는 사랑하라고 하시니 이 때문에
저를 포함하여 우리 중에는 용서치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자기를 심히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원수란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려고 발버둥 칠 것이 아니라
원수를 원수 아닌 사람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참 이것이 문제입니다.
원수인 사람이 원수가 아닌 사람으로 개과천선하고,
나에게 용서를 청해오면 용서해주고 사랑해줄 텐데
그 원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고 나만 속이 탑니다.
그러니 용서치 못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나라면
그가 변하기를 바라고 있을 수 없고 내가 변해야 합니다.
용서치 못하는 나에서 용서할 수 있는 나로 말입니다.
우선 내가 변하려는 마음을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용서치 못하는 것이 실은 용서해주고 싶지 않고,
그래서 용서하려고 마음먹는 것에서부터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불행하게 한 사람은
내가 징벌하든 하느님께서 징벌을 내리시든 징벌을 받아야지
나의 원한이 풀리고 그래서 더 이상 원수가 되지 않지요.
나는 무척 아픈데 그는 전혀 아프지 않고
나는 불행한데 그는 행복한 것이 너무 억울하고 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가 잘못을 뉘우치지도 용서를 청하지도 않아도 용서할 수 있고,
그가 징벌을 받지도 불행해지지도 않아도 내가 용서할 수 있으려면
내가 그보다 월등하게 행복해야 하고
그 월등한 행복이 월등한 사랑으로 인해 주어졌을 경우입니다.
증오는 결국 사랑에 의해 치유된다는 얘기인데
이 세상의 증오는 하늘의 사랑에 의해 치유된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빛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사람만이 이 세상의 증오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도 되는 거지요.
물론 증오의 치유는 꼭 하느님의 사랑이 아닌
인간의 사랑을 받고서도 이루어질 수 있지만
그 인간의 사랑이 신적인 사랑이어서
이 인간의 사랑이 하느님 사랑의 중매가 되고
마중물이 될 경우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의 사랑이 증오를 치유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사랑에 도달하는 데에
참으로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지요.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의 중매쟁이들이 되는 오늘이 되시길...
오늘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