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자선과 단식과 기도를 위선자들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지 말라고 하시며 그리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그렇게 하면 사람들에게서 보상을 받기 때문이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우선 자선을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경우 그 자선이 정말 자선일까요?
자선이란 선이 필요한 그 누군가를 위한 것인데
보이기 위한 것이면 그것이 쇼이지 어찌 자선이겠습니까?
쇼Show란 말이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겁게 하고 뭔가 느끼게 하면서
자신은 그에 대한 찬사를 듣고자 하는 거지요.
그러므로 자선쇼를 하는 거라면 그것을 잘하는 것으로 칭찬을 받겠지만
자선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한다면
그것은 자선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을 이용해먹는 것에 불과하고,
그래서 그에게 좋은 일을 한 게 아니라 나쁜 짓을 한 겁니다.
제가 옛날에 결핵환자들을 위해 일할 때 아주 심한 말을 들었는데
저희가 자기들을 팔아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들을 팔아 후원금을 챙기고,
자기들을 팔아 좋은 일을 한다는 거였지요.
그분들이 그동안 그렇게 이용을 많이 당해 그런 말을 한 것이긴 하지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니라고, 1%도 아니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저의 만족, 곧 나는 선행을 했다는
자기만족을 위한 불순물이 분명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식을 보겠습니다.
왜 단식을 보이기 위해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식이야말로 자신을 위한 것인데 왜 보이기 위해 합니까?
아마 미용을 위해 단식을 하거나 자기 건강을 위해 단식을 하면
단식을 한다는 것을 그저 얘기는 하더라도 보이기 위해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보이기 위해 단식을 한다는 것은 그 단식이 진정
자기 영혼 건강을 위해 하거나 하느님 사랑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람이거나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겠지요.
제일 문제는 기도입니다.
아시다시피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인데 보이기 위해 하면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 있는 것이기에
이런 기도는 백날을 기도해도 기도한 것이 아니지요.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라고 하기에 말에 초점을 두곤 하지만
대화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기도란 본래
그저 하느님 앞에 있는 것이고 하느님과의 사랑의 만남입니다.
연인들의 만남으로 치면 데이트를 하는 것이고
그래서 기도란 하느님과의 데이트입니다.
물론 데이트를 하면 대화도 하지만 대화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대화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와의 만남에 충실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지 않고,
다른 것에 호기심 보이지 않고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쏟으며,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나와 다른 사람 신경이나 쓰고 있다면 연인의 데이트가 아니듯
하느님과의 데이트인 기도도 하느님 앞에 있는 것에 충실치 않으면
근본적으로 기도가 아님을 명심하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충살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