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주님은 오늘
표징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왜 그들이 표징을 받지 못하는지,
누구에게 표징은 주어지는 것인지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대뜸 그리고 결론처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표징이란 하늘의 표징이다.
그러므로 하늘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왜 이렇게 생각했냐면 하늘의 표징은 하늘이 주는 것인데
하늘을 지향하지 않는 사람에게 왜 하늘이 표징을 주겠습니까?
얼마 전에 성체를 모독한 것 때문에 뉴스가 떠들썩하였고
우리 가톨릭 대표자나 열심한 신자들은 분노를 보이기도 했지요.
이에 대해 신자들이 얘기를 할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성체모독을 한 그 사람들이나 그것을 뉴스화한 사람들에게 말려들지 마라!
성체모독은 하루 이틀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지속되어온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잘못이라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은 해야겠지만
호들갑을 떨거나 지나치게 분노/흥분하여 그들의 노림수에 말려들지 마라!
성체모독은 우리 안에서도 있어오지 않았는가?
그들은 의도적으로 성체모독을 하고
우리는 비의도적으로 성체모독을 한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성체의 삶을 정말 잘 살았다면 그들이 모독을 했을 것인가?
성체의 삶은 살지 않으면서 성체가 중요하다고 하니
우리와 우리 교회의 위선과 악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위선과 악을 들추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사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표지와 실재가 성체이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현재적으로 사랑하시는 표지와 실재가 성체이며,
우리 죄인을 위해 바치신 당신을 매일 받아먹음으로 힘을 얻어
당신처럼 많은 이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라는 권고와 명령이 성체잖아요?
그런데 이런 하늘의 표지를 우리가 가지고 있고 매일 접하면서도
여기서 하느님의 현존체험을 못하고
여기서 하느님의 힘을 얻어 입지 못하며
그래서 일치와 나눔의 삶을 살지 못하고
또 다른 하늘의 표징을 우리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표징은 하늘을 지향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땅의 삶을 살다가 하늘의 삶을 살려는 사람,
곧 회개하려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하늘의 표징을 요구하는 교만한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고
도우심을 청하는 겸손한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고
당신의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사실 우리는 하늘의 표징을 요구할 필요도 청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요구치 말아야 함은 물론 청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표징을 많이 주셨는데 뭘 요구하고 뭘 청합니까?
감사하고 감사의 응답으로서 하늘의 삶을 살아야 할 뿐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깨우치고 살기로 다짐하는 오늘입니다.
맡기며 기도 함께 보태겠습니다.
회개 하려는 이들과, 사랑하려는 이들과
함께하시는 주님 안에 머무는 오늘을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