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고배苦杯에서 축배祝杯까지.
오늘 야고보 사도의 축일의 전례는 의도적으로
그릇과 잔으로 독서와 복음을 연결시킵니다.
독서에서는 보물을 지니고 있는 질그릇에 대해서 얘기하고,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마시신 잔을 같이 마시는 것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질그릇이든 잔이든 무엇을 담는 용기容器이지요.
그런데 독서에서는 야고보 사도가 그리 귀한 그릇은 못되고
투박하고 값싸며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보물을 담고 있어서 보물단지, 곧 보물단지 야고보라고 얘기합니다.
문제는 복음에서 주님께서 마시신 잔과 같은 잔을 마실 거라는 점입니다.
주님께서 들고 있는 잔이 독배라면 그 잔을 같이 마시면 죽을 것이고,
고배라면 그 잔을 같이 마시면 쓸개를 마시듯 엄청 쓸 것이며,
축배라면 그 잔을 마실 때 아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것입니다.
주님의 잔 그래서 야고보도 마셔야 할 잔은 과연 어떤 잔입니까?
고배입니까, 축배입니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주님과 야고보의 잔은 고배에서 축배까지입니다.
처음에 고배를 마시고 이어서 독배를 마시지만
끝내는 축배를 마실 거라는 얘기지요.
너도 내 잔을 마실 거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야고보가 처음에
마시려고 했던 것은 당연히 고배나 독배가 아니라 축배였지요.
그래서 선뜻 자기도 마시겠다고 하였던 겁니다.
설사 고배를 마시겠다는 것일지라도 축배를 마시기 전에
어찌 단 한 번의 고배도 없을 수 있겠냐며 마시겠다는 거였을 겁니다.
다시 말해서 정권을 잡는데 ‘어찌 어려움이 없을 수 있겠느냐?’
그런 어려움을 통해서 끝내는 축배를 마실 거라는 거였을 테지요.
그러니까 고배를 통한 축배가 주님과 야고보 사이에 차이가 있는데
그 축배가 이 세상의 축배냐, 하느님 나라의 축배냐의 차이입니다.
아시다시피 주님께서 마시신 잔은 정말 이 세상에서
고배와 독배를 마시고 돌아가신 뒤에 천국에서의 축배인데
야고보는 고배는 마실지언정 독배는 마시지 않는 이 세상의 축배입니다.
그런데 독배는 결코 마실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던 야고보가 결국에는 주님 말씀대로 고배에 이어 독배까지 마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고, 그 쓴 잔을 마시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그의 욕심이 사랑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하느님께서 그의 욕심을 사랑으로 바꿔주셨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고배를 먼저 마시게 하셨고,
이 고배를 통하여 이 세상 권력과 영화의 꿈을 완전히 포기케 하신 다음
주님께서는 사랑의 성령을 보내시어 욕심을 사랑으로 바꾸신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처럼 주님의 첫 제자였고 가장 받는 세 제자 중의 하나였으며
그래서 치맛바람까지 일으키며 베드로와 권력을 놓고 경쟁을 하던 야고보가
제자들 중에서 첫 번째로 이 세상 고배와 독배에서
천국 축배까지 마신 제자가 되었습니다.
아니, 야고보는 제자들 중에서만 첫 번째가 아닙니다.
우리들 중에서도 첫 번째입니다.
우리도 고배에서 축배까지 마셔야 할 존재들이 아닙니까?
그러니 주님이 우리에게도 내가 마실 잔을 마시겠냐고 물으시면
우리도 얼떨결에라도 야고보처럼 마시겠다고 답을 해야겠습니다.
주님과 동행하시는 길이니 다만, 폭염속 뜨거운 길에 바람 살랑 살랑 말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