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273 추천 수 0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수정 삭제

No Attached Image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체성사를 특별히 기념하고 그 사랑의 신비를 묵상하는 날입니다. 이 날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신 신비, 곧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 사랑을 기념하며, 그러한 사랑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의 양식으로서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빵이신 예수님의 살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무엇이기에, 우리를 영원히 죽지 않도록 한다는 것일까요?

인간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계속 그 생명을 유지하고자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 때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생존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 역시, 내 존재가 없어지지 않고 영원하기를 갈망합니다.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육신이 아니더라도, 이름이나 명예로라도 이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어렵지 않게 접하는 표현 중에 ‘가문의 영광입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이 표현에서, 우리 존재가 잊혀 지지 않고, 기억 속에서라도 영원하기를 바라는 인간의 갈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아무리 많은 재화를 가지고 있고, 모두가 존경할만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였고, 내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이 참된 행복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루카 복음에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 부자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처럼, 당분간 걱정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만큼의 많은 재산을 모아 두고서는, 자기 영혼에게,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루카 12,19)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날 밤 그의 목숨을 거두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마태 16,26)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것 중에, 생명과 견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행복은, 생명 자체라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이 세상에서 많은 재화를 모으고, 좋은 가정을 이루고, 업적을 쌓는 일’ 정도일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행복도 눈에 보여야 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세상을 살아가고, 유한한 것 안에서 행복을 찾는 그들에게 있어서, 행복 또한 사라져버리고 마는 유한한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 곧 무한한 행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 또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이미 약속되어 있는, 영원한 생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 방법은 너무나 어렵고, 알아듣기 힘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곧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유한한 인간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임을 생각할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죽음 다음에 찾아오는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죽지만, 그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다시 태어남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과연, 죽음을 겪으시고, 영원한 삶으로 다시 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유한한 인간이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과 다른 점이 무엇이기에, 그 죽음이 영원한 삶으로 이어졌습니까?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죽음은, 죄로 인해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인간이 되어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신 사랑의 결과물이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온 생애를 바쳐, 인간을 사랑하고 또 사랑한 그 결과 맞이하였던 죽음이었기 때문에, 그 죽음은 사랑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사랑은 죽음을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그 무엇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그 무언가를 살리고자 하는 열망과 노력과 자기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하철에 떨어진 중년을 위해 목숨을 내 던진 젊은이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 젊은이의 생각과 행동이 참으로 거룩하고 기특하고 위대하구나! 중년의 목숨은 살렸으나, 자신의 목숨을 잃었으니, 무슨 소용이 있나?’ 하지만,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죽음이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니며, 결국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죽음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모두 내어 주시고, 당신께서 먼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나 자신을 내어줄 때, 내가 영원한 생명에 한 발자국 나아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우리가 희망하고, 갈망하며, 이루어야 할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이 곧,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삶이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살과 피를 먹고, 영원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과연 나는 어떠한 방식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또 삶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질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3Jun

    텅빈 충만

    성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권고한다: (영적인 권고 11). 오늘 주님께서 드려주시는 말씀을 프란치스코는 나름대로 이렇게 해설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고 카이사르의 ...
    Date2008.06.03 By마중물 Reply2 Views1283
    Read More
  2. No Image 02Jun

    연중 9주 월요일-하느님 은총에 우리는?

    오늘부터 베드로 사도의 두 번째 편지가 읽힙니다. 이 편지를 시작하면서 베드로 사도는 먼저 은총과 평화가 넘치기를 기원하는데, 이 은총과 평화는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우리에게 내려진다고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의 무엇...
    Date2008.06.02 By당쇠 Reply1 Views1313
    Read More
  3. No Image 01Jun

    연중 제 9주일-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 하느님이라 하고 습관처럼 주 나의 하느님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뜯어보면 하느님께서는 주님이시라는 말이고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나는 하느님의 종이라고 고백하는 것이고, 하느님과...
    Date2008.06.01 By당쇠 Reply1 Views1831
    Read More
  4. No Image 31May

    마리아의 방문 축일

    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신 것을 기념합니다. 그런데 저는 가끔 두 분의 만남을 불경하게도 우스꽝스럽게 상상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상상을 할 때면 웃음이 입가에 배이기도 하는데, 그것은 주름이 쭈글쭈글한 늙은 할망구가 ...
    Date2008.05.31 By당쇠 Reply3 Views1275
    Read More
  5. No Image 30May

    예수 성심 대축일-넉넉한 마음, 편한 멍에

    “고생을 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너무도 마음을 따듯하게 ...
    Date2008.05.30 By당쇠 Reply3 Views1496
    Read More
  6. No Image 29May

    연중 8주 목요일-우리는,

    베드로 서간의 계속되는 말씀은 우리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저께는 우리가 순종하는 자녀, 주님처럼 거룩한 사람이라는 말씀이었고, 어저께는 마음과 영혼이 깨끗한 사람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가 갓난아이, 살아있는 돌, ...
    Date2008.05.29 By당쇠 Reply2 Views1265
    Read More
  7. No Image 28May

    갈망 - 연중제8주간 목요일

    갈망 오늘 우리는 눈이 멀어 앞을 볼 수 없는 바로티매오라는 거지의 믿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주위의 제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큰소리로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묻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
    Date2008.05.28 By베지 Reply2 Views1289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1264 1265 1266 1267 1268 1269 1270 1271 1272 1273 ... 1321 Next ›
/ 132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