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연스럽게 주 하느님이라 하고
습관처럼 주 나의 하느님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뜯어보면 하느님께서는 주님이시라는 말이고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나는 하느님의 종이라고 고백하는 것이고,
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하느님과 나의 관계가
참으로 묘할 때가 많습니다.
분명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실제 속 내용은 내가 주인이고 하느님은 종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이라고 공손하게 부르고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하고 겸손하게 청하지만
속 내용은 내 뜻, 내가 원하는 것, 이것이니
하느님 당신은 이것을 하시오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나 해 드리는 것은 없고
노상 달라고 하고 해달라고만 하는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어린 아이적인 사랑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저의 조카들을 보면 이러던 아이들이 시집 장가가면
즉시 어른스럽게 부모님을 봉양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들은 시집 장가가서도 아직도 애들처럼 달라고만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신앙생활한지도 오래 되었어도
거의 전혀 성장하지 않고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찾지 않고 늘 달라고만 하는
유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또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거래 관계이고, Give and Take 관계입니다.
하느님, 이것 주시고, 이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이것 드리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반대로 하느님 제가 이것 드릴 터이니 이렇게 해 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헌금하고, 십일조하고, 교무금 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기에 감사와 사랑은 없습니다.
복채 많이 내고 점치는 것이나,
큰 돈 들여 거창하게 푸닥거리하는 것이나 다를 것 없습니다.
가능한 조금 주고 많은 것 받으려 하고
원하는 대로 안 이루어지면 그 점쟁이나 무당에게 성내고
무당과 단골관계를 때려 치겠지요.
우리도 그런 단골관계의 신앙생활은 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군신과 주종의 관계이고 충성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물론 사랑의 관계이지만,
그 이전에 충성의 관계라는 말씀입니다.
주인께 충성스러운 종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주인께 충성스러운 것입니까?
영어의 그 ‘Stand by’를 잘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Stand by'는 말 그대로 옆에 서 있는 것이지요.
주인께 충성스러운 종은 不事二君,
즉 다른 주인을 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볼 일 때문에 나돌아 다니지도 않습니다.
늘 한 주인을 섬기고, 늘 주인 곁에 머뭅니다.
충성스럽게 한 주인을 섬기는 것이고,
충성스럽게 주인 옆을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로 ‘Stand by'는 명령에 늘 대기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명령이 떨어져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명령의 내용에 따라 행동으로 옮기거나 말거나 하지 않습니다.
내가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님께 좋고 주인님께서 원하시면 나는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 충성스러움은 주인님께서 좋으면
나도 다 좋은 그런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종고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이것을 아는 사람은
주님 계명을 지키고 축복을 받는 슬기로운 사람이고
이걸 모르는 사람은
제 좋을 대로 하다 저주를 받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습관처럼 주 나의 하느님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뜯어보면 하느님께서는 주님이시라는 말이고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이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나는 하느님의 종이라고 고백하는 것이고,
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에서는 하느님과 나의 관계가
참으로 묘할 때가 많습니다.
분명 하느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실제 속 내용은 내가 주인이고 하느님은 종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이라고 공손하게 부르고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하고 겸손하게 청하지만
속 내용은 내 뜻, 내가 원하는 것, 이것이니
하느님 당신은 이것을 하시오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나 해 드리는 것은 없고
노상 달라고 하고 해달라고만 하는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어린 아이적인 사랑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저의 조카들을 보면 이러던 아이들이 시집 장가가면
즉시 어른스럽게 부모님을 봉양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들은 시집 장가가서도 아직도 애들처럼 달라고만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신앙생활한지도 오래 되었어도
거의 전혀 성장하지 않고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찾지 않고 늘 달라고만 하는
유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서 또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거래 관계이고, Give and Take 관계입니다.
하느님, 이것 주시고, 이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이것 드리고, 이렇게 하겠습니다.
반대로 하느님 제가 이것 드릴 터이니 이렇게 해 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헌금하고, 십일조하고, 교무금 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기에 감사와 사랑은 없습니다.
복채 많이 내고 점치는 것이나,
큰 돈 들여 거창하게 푸닥거리하는 것이나 다를 것 없습니다.
가능한 조금 주고 많은 것 받으려 하고
원하는 대로 안 이루어지면 그 점쟁이나 무당에게 성내고
무당과 단골관계를 때려 치겠지요.
우리도 그런 단골관계의 신앙생활은 하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군신과 주종의 관계이고 충성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물론 사랑의 관계이지만,
그 이전에 충성의 관계라는 말씀입니다.
주인께 충성스러운 종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주인께 충성스러운 것입니까?
영어의 그 ‘Stand by’를 잘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Stand by'는 말 그대로 옆에 서 있는 것이지요.
주인께 충성스러운 종은 不事二君,
즉 다른 주인을 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볼 일 때문에 나돌아 다니지도 않습니다.
늘 한 주인을 섬기고, 늘 주인 곁에 머뭅니다.
충성스럽게 한 주인을 섬기는 것이고,
충성스럽게 주인 옆을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로 ‘Stand by'는 명령에 늘 대기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명령이 떨어져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명령의 내용에 따라 행동으로 옮기거나 말거나 하지 않습니다.
내가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님께 좋고 주인님께서 원하시면 나는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 충성스러움은 주인님께서 좋으면
나도 다 좋은 그런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종고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슬기로움과 어리석음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이것을 아는 사람은
주님 계명을 지키고 축복을 받는 슬기로운 사람이고
이걸 모르는 사람은
제 좋을 대로 하다 저주를 받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저는 늘 당신과 함께 있어
당신께서 제 오른 손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저는 주 하느님을 제 피신처로 삼아
당신의 모든 업적을 알리렵니다.
-항상 주님 곁에 머물고 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충성스런 종'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