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일곱 번 정도 용서하면 되는지 주님께 여쭙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왜 이런 질문을 하였을까요?
아마 자기는 한 번 용서하기도 힘든데
주님께서는 더 용서하기를 바라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 사도처럼 몇 번을 용서해줘야 하는지 생각하곤 합니다.
한 번을 간신히 용서했는데 그가 다시 또 나에게 죄를 지으면
이제는 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고 그래서 암담하고 답답하여
몇 번을 더 용서해야 하는지 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아예 횟수를 생각지 말라는 뜻으로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한 번 용서했으면 끝까지 그리고 영원히 용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한 번을 진짜로 그리고 제대로 용서를 했다면
끝까지 용서하고, 영원히 용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용서했다고 생각하지만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의지적으로 용서하거나 용서하려 한 것이지
사랑과 연민으로 진짜 그리고 제대로 용서한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생각해봅시다.
모기에 한 방 물리고도 괘씸해 그 모기를 죽이려고 하는 내가
누군가에게 찔려 피가 철철 나고 아프다면,
그저 아픈 정도를 넘어 너무 괴롭고 그래서 그가 너무 밉다면,
괴롭고 미운 정도를 넘어 그래서 내가 불행하다면
나를 불행케 한 그를 내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사랑 가득한 사람만이 용서하고,
행복한 사람만이 용서하는 것이니
미워죽겠는데도 억지로 용서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불행한데도 그를 용서해 행복하게 하려고 하지 말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사랑을 내 안에 채우는 것이고,
먼저 내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지 말고
내가 행복할 줄 모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때문에 내가 상처 받았다고 생각지 말고
내가 약하여 상처 받았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행복하려고 하지 않고
그의 사랑으로 행복하려고 했던 불행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을 깨달아 하느님의 사랑으로 내가 행복하다면,
나 같은 죄인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그 사랑에 감지덕지한다면,
나는 이렇게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로 행복이 차고 넘치는데
그는 아직도 이 사랑과 용서의 이치를 모르고 불행한 걸 본다면
그가 미운 것이 아니라 가엽고 불쌍할 것이며
나만 행복한 것이 도리어 미안해 용서치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용서는 행복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고,
하느님 사랑을 받는 사람만이 행복한 것임을 깨닫는 오늘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