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일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의 축일이 있음에도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의 축일을 따로 지냄은
성 김 대건 안드레아가 한국의 첫 번째 사제로서의 의미와
순교자로서의 의미가 겹쳐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성 김 대건 안드레아를 생각할 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그의 순교와 관련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찌하여 한국의 첫 사제를 순교하게 하셨는지,
그것도
신부가 되자마자 1년여 만에 순교하게 하셨는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제 동창 신부의 죽음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친구 최 요한은 신부가 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죽었습니다.
그 때,
그렇게 빨리 데려가실 걸 왜 신부가 되게 하셨는지
조금은 따지듯이 하느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사제가 되었으면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을 위해 좀 더 봉사하게 하고 데려가시지 않고
어찌 그리 일찍 데려가셨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한이 일찍 죽어서 불쌍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요한은 신부가 되어 죄짓지 않고 일찍 죽었으니
오히려 한 송이 깨끗한 꽃처럼 하느님께 간 행복한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그것은 요한을 일찍 죽은 것이 살아남은 우리에게
어떤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성 김 대건 안드레아의 경우는 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15살 그 어린 나이에
우리나라도 아닌 저 먼 이국땅에서
거의 10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고 사제가 되었는데
그래 바로 데려가시는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생각은 늘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으시지만
살아서 무엇을 많이 하는 것보다
온 생애를 오롯이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더 값지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거 하게 하신 것이 아닐까요?
두 번째는 성 김 대건 안드레아의 위대함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확히 얘기하면
2004년 이라크에서 김 선일 씨가 피살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성 김 대건 안드레아의 위대함은
한국의 첫 사제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김 선일 씨가 이슬람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모든 이가 그의 죽음을 추모하였지만
일부 개신교 목사님들이 용감히 순교하지 못하고
이슬람에게 살려달라고 했다고 그를 비난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때 저는 성 김 대건 안드레아를 떠올렸습니다.
그때까지 성 김 대건 안드레아의 순교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김 선일 씨보다도 더 어린 김 대건 안드레아가 만일 배교했다면
첫 사제를 배교자로 둔 한국 가톨릭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케 되었고
이런 생각을 하니 성 김 대건 안드레아가
너무도 대단하고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 김 대건 안드레아는 만 25세하고 26일을 살고 순교했는데
신자들에게 보낸 그의 마지막 편지는
인생을 오래 살고 깨달은 신앙인의 그런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제형들아, 알지어다.
우리 주 예수 세상에 내려,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데로조차 성교회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게 하신지라.
이제 우리 조선에 성교 들어온 지 5,60년에 군난으로 이제까지 이르고
또 오늘날 군난이 치성하여 여러 교우와 나까지 잡혔으니
우리 한 몸 되어 애통지심이 없으며
육정에 차마 이별하기 어려움이 없으랴.
그러나 성경에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 돌아보시고, 모르심 없이 돌보신다 하셨으니
어찌 이렇다 할 군난이 主命 아니면 主賞主罰이 아니랴.
고로 이런 군난도 역시 천주의 허락하신 바니,
너희 감수 인내하여 爲主하고
오직 주께 빌어 평안함 주시기를 기다리라.”
25살 새신부의 의젓함이 가히 70 노사제의 의젓함을 능가하고
모든 어려움을 주님의 뜻 안에서 담담히 받아들이는 품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를 품에 안은 그 어머니 같지 않은가?
갓 사제가 된 새 사제들과
한국의 모든 사제들은 배울 바 있도다!
성 김 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의 축일을 따로 지냄은
성 김 대건 안드레아가 한국의 첫 번째 사제로서의 의미와
순교자로서의 의미가 겹쳐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성 김 대건 안드레아를 생각할 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그의 순교와 관련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어찌하여 한국의 첫 사제를 순교하게 하셨는지,
그것도
신부가 되자마자 1년여 만에 순교하게 하셨는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제 동창 신부의 죽음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친구 최 요한은 신부가 되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죽었습니다.
그 때,
그렇게 빨리 데려가실 걸 왜 신부가 되게 하셨는지
조금은 따지듯이 하느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사제가 되었으면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을 위해 좀 더 봉사하게 하고 데려가시지 않고
어찌 그리 일찍 데려가셨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요한이 일찍 죽어서 불쌍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요한은 신부가 되어 죄짓지 않고 일찍 죽었으니
오히려 한 송이 깨끗한 꽃처럼 하느님께 간 행복한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그것은 요한을 일찍 죽은 것이 살아남은 우리에게
어떤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성 김 대건 안드레아의 경우는 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15살 그 어린 나이에
우리나라도 아닌 저 먼 이국땅에서
거의 10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고 사제가 되었는데
그래 바로 데려가시는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생각은 늘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으시지만
살아서 무엇을 많이 하는 것보다
온 생애를 오롯이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더 값지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거 하게 하신 것이 아닐까요?
두 번째는 성 김 대건 안드레아의 위대함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확히 얘기하면
2004년 이라크에서 김 선일 씨가 피살되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성 김 대건 안드레아의 위대함은
한국의 첫 사제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김 선일 씨가 이슬람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모든 이가 그의 죽음을 추모하였지만
일부 개신교 목사님들이 용감히 순교하지 못하고
이슬람에게 살려달라고 했다고 그를 비난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때 저는 성 김 대건 안드레아를 떠올렸습니다.
그때까지 성 김 대건 안드레아의 순교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김 선일 씨보다도 더 어린 김 대건 안드레아가 만일 배교했다면
첫 사제를 배교자로 둔 한국 가톨릭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케 되었고
이런 생각을 하니 성 김 대건 안드레아가
너무도 대단하고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 김 대건 안드레아는 만 25세하고 26일을 살고 순교했는데
신자들에게 보낸 그의 마지막 편지는
인생을 오래 살고 깨달은 신앙인의 그런 경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제형들아, 알지어다.
우리 주 예수 세상에 내려,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데로조차 성교회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게 하신지라.
이제 우리 조선에 성교 들어온 지 5,60년에 군난으로 이제까지 이르고
또 오늘날 군난이 치성하여 여러 교우와 나까지 잡혔으니
우리 한 몸 되어 애통지심이 없으며
육정에 차마 이별하기 어려움이 없으랴.
그러나 성경에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 돌아보시고, 모르심 없이 돌보신다 하셨으니
어찌 이렇다 할 군난이 主命 아니면 主賞主罰이 아니랴.
고로 이런 군난도 역시 천주의 허락하신 바니,
너희 감수 인내하여 爲主하고
오직 주께 빌어 평안함 주시기를 기다리라.”
25살 새신부의 의젓함이 가히 70 노사제의 의젓함을 능가하고
모든 어려움을 주님의 뜻 안에서 담담히 받아들이는 품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를 품에 안은 그 어머니 같지 않은가?
갓 사제가 된 새 사제들과
한국의 모든 사제들은 배울 바 있도다!
감사드림니다.
주님께서 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그렇게 빨리 모셔 갔는지..... 이제는 알겠습니다.
밀알이 되어 주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사랑으로 하시는 모든 일들을
평화 속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인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