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082 추천 수 1 댓글 2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2018년 9월 16일 연중 24주일
.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행동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초대 은수자와 수도자들이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입니다. 
참된 나의 정체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겸허한 질문과 
아울러 다른 사람들의 판단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해 겸허히 바라보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이렇게 될 때 자신의 도덕과 선행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고 착하고 정직하고 
종교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장식물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된 신앙인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으로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판단에 좌우되면 자신의 모든 삶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것보다는 행복에 주의를 기울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아름다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푀멘 교부가 어느 날 요셉 교부에게 “수도자가 되는 길을 일러 주십시오.”하고 청합니다. 
요셉 교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서나 저 위에서 안식을 누리고 싶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만 묵상하고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무엇보다도 겸손에서 비롯됩니다. 
겸손은 하느님께서 누구이시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완전히 깨달을 수 있도록 인간을 이끌어 줍니다.
 겸손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참된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며 다른 이들의 잘못을 탓하지 않습니다. 
남에 대한 판단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표지입니다. 
자신의 죄를 겸허히 바라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영혼의 평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통해서 내가 참으로 누구인가를 알게됩니다. 
바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을 만날 수 있으며 좀 더 활동적이 되고 숨겨진 보물인 나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처를 통해서 내가 스스로 덮어쓴 가면들을 부수어 그 안에 있는 참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버리라’는 의미는 자기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아가 ‘대단한 사람’이라든가 훌륭한 신앙인이 되어보겠다는 생각마저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다시 말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 대해 언제나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기 위한 완전한 자아포기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내 안에는 예수님이 계실 뿐이다”는 바로 이러한 겸허한 대답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깨닫고 일상에서 실천으로 드러나기를 오늘 복음은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고도미니코 ofm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이필수다리아 2018.09.16 07:50:07
    감사합니다....^^
  • ?
    홈페이지 야고보 2018.09.16 05:34:55
    매주일 마다 말씀 잘 듣고 있긴 한데... 감사합니다.
    늘 건강과 평화를 빕니다. -제주-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31Mar

    사순 제4주일

    루카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3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 가지 모두 되찾은 이야기인데, 앞의 두 가지 비유와 오늘의 비유가 조금은 다른 것처럼 생각됩니다. 앞의 두 비유, 즉 되찾은 양의 비유나 되찾은 은전의 비유에서는 주인...
    Date2019.03.3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410
    Read More
  2. No Image 31Mar

    2019년 3월 31일 사순 제4주일-터키 에페소 기도의 집

     2019년 3월 31일 사순 제4주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자비와 사랑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 아들을 둔 아버지의 비유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하느님 나라의 본질에 관한 예수님의 수많은 비유 가운데 백미(白眉)...
    Date2019.03.31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836
    Read More
  3. 30Mar

    사순 제4주일

    2019.03.31. 사순 제4주일 - http://altaban.egloos.com/2234882
    Date2019.03.30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411 file
    Read More
  4. No Image 30Mar

    사순 제3주간 토요일

    성경에서 '의로움' '완전함' '흠 없음' '거룩함' 등의 단어들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어들은 첫째, 하느님을 표현하는데 사용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거룩하시다. 하느님께서는 완전하시다.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이 아니시기에, 신이기 때...
    Date2019.03.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357
    Read More
  5. 30Mar

    사순 제3주간 토요일

    2019.03.30. 사순 제3주간 토요일 - http://altaban.egloos.com/2234867
    Date2019.03.30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381 file
    Read More
  6. No Image 30Mar

    사순 3주 토요일-젖은 빨래를 햇빛에 말리듯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호세아 예언자가 주님을 알자고 한 것은 모르니까 알자고 한 것이고, 알도록 힘쓰자는 것도 모르는데도 알려하지 않으니 이제는 힘쓰자는 거지요.   그런데 사실 이런 말을 제가 같이 사는 형제로부터 듣게 된...
    Date2019.03.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314
    Read More
  7. No Image 29Mar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계명에 대해서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의 한 구절과 레위기의 한 구절로 답을 하십니다. 첫 번째 계명인 신명기의 말씀에서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할 부분은, '우리의', '너의'라는 소유 대명사입니다. 주 하...
    Date2019.03.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36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80 681 682 683 684 685 686 687 688 689 ... 1365 Next ›
/ 136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