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078 추천 수 1 댓글 2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2018년 9월 16일 연중 24주일
.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따른 행동과 결단을 요구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초대 은수자와 수도자들이 근본적으로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입니다. 
참된 나의 정체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겸허한 질문과 
아울러 다른 사람들의 판단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해 겸허히 바라보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이렇게 될 때 자신의 도덕과 선행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고 착하고 정직하고 
종교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장식물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참된 신앙인으로 이끌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으로 자신이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판단에 좌우되면 자신의 모든 삶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것보다는 행복에 주의를 기울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아름다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푀멘 교부가 어느 날 요셉 교부에게 “수도자가 되는 길을 일러 주십시오.”하고 청합니다. 
요셉 교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에서나 저 위에서 안식을 누리고 싶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만 묵상하고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무엇보다도 겸손에서 비롯됩니다. 
겸손은 하느님께서 누구이시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완전히 깨달을 수 있도록 인간을 이끌어 줍니다.
 겸손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해주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참된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며 다른 이들의 잘못을 탓하지 않습니다. 
남에 대한 판단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표지입니다. 
자신의 죄를 겸허히 바라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영혼의 평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통해서 내가 참으로 누구인가를 알게됩니다. 
바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을 만날 수 있으며 좀 더 활동적이 되고 숨겨진 보물인 나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처를 통해서 내가 스스로 덮어쓴 가면들을 부수어 그 안에 있는 참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버리라’는 의미는 자기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아가 ‘대단한 사람’이라든가 훌륭한 신앙인이 되어보겠다는 생각마저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다시 말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 대해 언제나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기 위한 완전한 자아포기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내 안에는 예수님이 계실 뿐이다”는 바로 이러한 겸허한 대답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깨닫고 일상에서 실천으로 드러나기를 오늘 복음은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고도미니코 ofm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이필수다리아 2018.09.16 07:50:07
    감사합니다....^^
  • ?
    홈페이지 야고보 2018.09.16 05:34:55
    매주일 마다 말씀 잘 듣고 있긴 한데... 감사합니다.
    늘 건강과 평화를 빕니다. -제주-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0Feb

    연중 6주 수요일-마련인 인간

    어제오늘의 창세기는 노아의 홍수 얘깁니다. 어제는 인간이 언제나 하는 모든 짓이 악하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창조를 후회하시고 모든 것을 인간과 함께 멸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노아의 가족과 일부 생물들 외에 모든 조물을 홍수로 멸하신...
    Date2019.02.2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4 Views1325
    Read More
  2. No Image 17Feb

    연중 제 6주간 월요일 복음 나눔 -보이지않은 표징-

    T. 평화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논쟁을 하시고 바리사이들은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오는 그 어떠한 표징도 드러내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전부터 갖가지...
    Date2019.02.17 Category말씀나누기 By일어나는불꽃 Reply0 Views1003
    Read More
  3. No Image 17Feb

    연중 제6주일

    2019.02.17. 연중 제6주일 - http://altaban.egloos.com/2234155
    Date2019.02.17 Category말씀나누기 By오바오로 Reply0 Views513
    Read More
  4. No Image 17Feb

    연중 제 6 주일-행복, 우리의 한 가지 목적

    왜 살까? 왜 그리스도교를 믿을까? 왜 수도생활을 하고 왜 결혼을 할까? 그리스도인으로 살면 되지 왜 굳이 재속 프란치스코회원이 될까? 왜 돈을 벌고 왜 일을 할까?   이런 거창한 질문을 받으면 대다수가 당장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거나 생각해...
    Date2019.02.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720
    Read More
  5. No Image 17Feb

    2019년 2월 17일 연중 제 6주일 -터키 에페소 기도의 집

    2019년 2월 17일 연중 제 6주일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참된 행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행복을 지향하는 데 참된 행복은 먼저 하느님에 대한 대한 갈망안에서 옵니다. 인간은 자신의 유한성으로 말미암아 현실적으로 참된 행복을 맛...
    Date2019.02.17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434
    Read More
  6. No Image 16Feb

    연중 제6주일

    사람들과 관계를 맺다보면 항상 고민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관계가 깊어집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기 때문인데, 상대방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이 항상 좋게 작용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즉 상대방에 대해서 좋은 ...
    Date2019.02.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548
    Read More
  7. No Image 16Feb

    연중 5주 토요일-핑계, 자유를 포기한 죄

    오늘의 창세기는 어제 하느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가 어떤 짓을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벌을 받는지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창세기를 읽으면서 제게 든 느낌이랄까 생각은 어제 선악과를 따 먹은 한 번의 죄로 그치지 않고,...
    Date2019.02.1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0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82 683 684 685 686 687 688 689 690 691 ... 1355 Next ›
/ 135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