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발레 로미타 성당의 제단화 (Polittico di Valle Romita : 1410-1412)
작 가 : 젠틸레 파브리아노 (Gentile da Fabriano: 1370-1427)
크 기 : 280 X 250cm (목판 템페라,금박)
소재지 : 이태리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Pinacoteca Brera)
가톨릭 교회는 초대 교회부터 시작해서 신앙의 내용을 아름답게 표현하려는 여러 시도를 했고, 그 시대 문화와 예술 표현을 과감히 수용함으로서 성 미술이 신앙의 내용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교회의 체제 수호라는 중압감에 찌들려 신학이 과감히 표현하지 못했던 것도 표현함으로서 단순히 교회의 장식 기능이 아닌 예술을 통한 복음적 예언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작품은 후기 고딕 양식의 제단화로서 이태리에서서 산세가 수려하면서도 험한 마르케(Marche) 지역 프란치스칸 성지에 있는 성당을 위해 제작한 것이다.
제단화란 이름 그대로 성당의 중심인 제단을 장식하기 위한 것인데, 그 내용은 단순한 장식 요소가 아니라 이 성당을 찾는 신자들에게 자기들이 전하고픈 신앙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당시 교회의 현실은 학자나 귀족들이나 성직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문맹이었고 더욱이 인쇄술이 없었을 때였으니 성서를 직접 읽기가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이런 현실에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리 교육의 수단은 바로 성화였기에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성화를 “가난한 사람들의 복음서”라고 말씀하실 만큼 중요한 성화는 단순한 장식적 차원을 넘어 당시로서는 교리 해설과 복음선포의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이 제단화는 당시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개혁 세력들의 본거지로서 신자들에게 큰 신뢰를 주고 있던 수도자들이 머물고 있는 은둔소(Eremo)에 프란치스칸들에게 대단한 신뢰와 사랑을 보이던 그 지역 신심 깊은 귀족이 자기의 무덤을 이 은둔소에 남길 결심을 하면서 봉헌 한 것이다.
이 제단화는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받아 금박으로 처리된 것이어서 가치 역시 대단한 것이었다.
이곳은 순례자들이 의식있는 프란치스칸들의 지도를 받기 위해 많이 모이는 당시 인기 있는 성지였던 곳이기에 순례자들의 신심 양성에 도움이 되는 차원에서 배려된 작품이어서 당시에 필요했던 신앙의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다.
중앙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 선택된 도구인 마리아에게 여왕 관을 씌우고 있다. 성부는 하늘에서 위를 내려다보시고 성자 예수님은 어머니 곁에 계신다. 성자 예수께서 자기를 낳으신 어머니에게 성부를 대신하여 왕관을 씌우고 계신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왕으로 성모님을 여왕으로 표현하는 것은 성서적인 바탕에 근거하고 있다.
“보라 동정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에게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 32)
이 성서 말씀은 중세 크리스챤들의 삶에서 심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왕직 표현에 성모님의 여왕직이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 “Theotokos” 로 부르기로 결정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왕직과 가장 가까운 칭호인 여왕직이 조화스럽게 배치되었다.
이 해설을 준비하는 과정에 우연스럽게 인터넷에 있는 우리나라 출신의 어떤 개신교 선교사가 쓴 에페소 방문기를 보게 되었는데 그의 논리가 참으로 황당하고 해괴한 것이었다.
그는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내린 바른 의미는 오늘 가톨릭 신자들이 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하는 것인데, 가톨릭교회가 이 교리를 왜곡하고 있다는 너무 수준급 궤변을 올린 것을 읽었는데, 우리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궤변이라 여기고 바른 이해를 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이 제단화를 보면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
주님께서 당신 모친 마리아에게 여왕관을 씌우고 계신 하단에는 일군의 천사들이 성모자를 우러러 보면 찬송을 올리고 있다.
교회에는 저녁 기도에 바치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성모 찬송이 있으며 아직도 수도원에서는 이 전통이 지켜지고 있는데, 이 찬송의 기원은 바로 성모님을 여왕으로 모심으로 시작된 것이다.
부활 찬송인 Regina Coeli, 연중 주간 찬송인 Salve Regina, 대림절 찬송인 Alma Redemtoris 사순절 찬송인 Ave Regina coelorum등이 있으며, 마스카니의 유명한 오페라 카발리에레 루스티카나에서 압권은 마지막 장에서 전체 배우들이 부르는 “레지나 첼리”이며 성모님의 대관은 앞에 거론한 이 땅의 무식하고 편협한 개신교 집단 외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류 전체에 많은 감동을 주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단의 우측엔 성 예로니모와 성 프란치스코, 그리고 왼쪽엔 성 도미니코와 성녀 막달레나가 성모자에게 시선을 두면서 경배하고 있다.
성 예로니모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신 학자이며 젊은 시절에 하느님만을 온전히 찾기 위해 광야로 가시어 오랜 세월 동안 은수 생활을 하시면서 신앙을 키운 성인이시다.
이 성지가 프란치스칸 운동의 혁신 세력으로서 오로지 하느님만을 찾기 위해 은둔 생활을 하는 프란치스칸 수도자들의 요람이니 성 예로니모를 주보로 모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예로니모 성인의 손엔 이들이 사는 은둔소의 집을 들고 계시는데, 이것은 성인께서 척박한 환경에서 영웅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을 도와주시고 보호하시시라는 것의 약속과 같은 것이다.
여기 모인 프란치스코 개혁 세력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성 예로니모 성인의 도움으로 굳건히 살면서 튼튼한 믿음의 성곽을 쌓게 되리란 자신들의 확신을 표현하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 개혁 세력들의 수호자와 같다. 여기 모인 수도자들은 회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나태와 안일 현상을 보이고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현실에 실망을 느끼며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은둔 생활을 시작했으니, 이들의 이상적인 모델은 자연스럽게 성 프란치스꼬였다.
프란치스꼬 수도회가 프란치스코 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인 이들에게 가장 확실하고 변함없는 지주가 되는 것이다.
성 도미니코는 성 프란치스코과 활동하던 시기에 교회의 개혁 세력이 되기 위해 탁발 수도회를 창설한 성인이시며,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너무 매혹되어 두 수도회를 합치자는 의견도 내실 만큼 프란치스코의 영적 형제와 같은 성인이기에 나란히 두고 있다.
성녀 막달레나는 당시엔 회개 생활의 모델이었다. 부패하고 안일한 교회가 정화되기 위해서도, 안일을 탐하는 수도자들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의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기에 회개 생활의 주보인 성녀를 여기에 등장시키고 있다.
이 작품 앞에 선 순례자들은 성녀 막달레나의 모범을 따라 쉼 없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상단 좌우에 역시 두 명씩 4명의 성인이 배치되어 있는데, 오른편으로부터 광야에서 고행하시는 세례자 요한과 당시 프란치스칸으로서 베로나에서 순교한 성 베드로가 있고, 왼편엔 도미니코 수도회 출신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와 오상을 받으시는 성 프란치스코가 있다.
원래 이 제단화의 중앙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있었는데, 해체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분리 되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서 전체 구도의 중심으로 배치되면서 신앙의 내용을 너무도 정확히 표현되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가 중앙에 있는 이 제단화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프란치스칸 신학을 극명히 드러나고 있다.
상단의 세례자 요한의 이곳 은둔 수도자들이 자기들의 주보로 모신 성인이었다. 세례자 요한이 황량한 광야에서 수행한 것처럼 이 은둔자들도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오직 주님만 따른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모인 것이기에 이곳을 지키는 수도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성인임에 틀림없다.
이곳은 산세가 너무 험준하고 교통이 불편한 곳이어서 오늘도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려 교통이 두절되는 곳이니, 이 은둔소가 설치된 당시에 이곳에 산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으나 이들은 생사를 건 마음으로 이곳에 정착했으니 자연스럽게 광야에서 수행한 세례자 요한의 보호를 생각했을 것이다.
오상을 받으시는 성 프란치스코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을 배치한 것은 탁발 수도자로서 신앙의 내용을 정확히 표현하는 신학 정립에 대단한 노력을 하셨던 성인과 오상을 받으심으로 제2의 그리스도로 불리게 된 성 프란치스코를 등장시킴으로서 탁발 수도회의 복음적 위상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제작한 이 한편의 제단화는 당시 교회의 신앙 감각 이해에 대단히 중요한 것을 표현하고 있다. 이 제단화에 등장하는 성인들은 또한 험준한 산악 지대에 오직 하느님만을 찾기 위해 모인 수도자들에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신앙에 정진하라고 격려하는 든든한 원군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성인들만 등장하는 제단화가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단조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섬세한 표정과 색체 배려를 했다. 상단에 있는 순교자 베드로를 참수하는 휘광이의 핏빛 색깔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조용한 방에서 하느님을 향한 깊은 명상에 잠긴 성인으로 표현함으로서 은둔자들의 귀감으로 상기시키고 있다.
아래 부분의 성 예로니모는 추기경 복장의 화려함으로 갈색 수도복의 프란치스코와 색채적으로 대비시키고, 검은 수도복의 성 도미니코와 분홍빛 색깔의 성녀 막달레나를 등장시킴으로 단조로움을 제거하고 복음적 생기와 역동성을 표현했다.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표현으로 수 많은 성인들이 대거 등장하는 대형 성화의 역할과 다르면서도 신앙의 내용과 성지의 의미성을 명쾌히 표현한 걸작으로 만들었다. 많은 제단화 중에서도 제작 의도성과 표현에 있어서도 프란치스칸 영성의 주요 관점인 단순성의 표현으로 영적 차원에서 걸작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다음의 성가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고 여겨져 아래의 링크를 걸어두려 한다. 이 동영상의 곡은 카발리에레 루스티카라는 오페라에 나오는 부활 찬송곡으로 그 작품의 배경인 시칠리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부활 대축일 미사를 끝낸 동네 사람들이 행렬하며 부른 아름답고 감동적인 성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