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18.10.22 08:56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조회 수 604 추천 수 2 댓글 4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자신을 위해서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고
오늘 복음은 이야기 하지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또 다른 관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으로만 일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노년에 가진 것도 없고
거기에 병까지 들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 희생이 복음을 살아가기 위한 것이었다고
거창하게 표현할 필요는 없지만,
그 희생의 끝은,
그 가난의 끝은
결코 복된 것이 아니라
비참함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복음이 이야기 하는 가난은
말뿐인 복된 가난이며,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당 안에서의 삶과
성당 밖에서의 삶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이 이야기하는 가난의 복됨은
저 세상에서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난을 통해서 하늘 나라를 차지한다고
복음 환호송은 이야기 하지만,
그 하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우리에게 그 하늘 나라가 이미 다가와 있다고
복음은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가난의 복됨은
저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그 무엇일 것입니다.

물론 그 복됨을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
하느님과의 일치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가난에서 오는 어려움 중에서도
하느님의 위로를 받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 앞으로
더 내어 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육체가 약해지면서
그 어려움은 점점 더 커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난이 복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한계에 부딛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그리고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볼 때,
그들에게 가난이 복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때로는 위선처럼 느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원래 가난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한계를 지닌 인간이라는 표현의
다른 말인 것 같습니다.
가난하고 한계를 지녔기에
인간은 그 안에서 고통 받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난이 복되다는 말은,
인간 자체가 복된 존재라는 것,
다시 말해 하느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말이 됩니다.
가난으로 처절하게 고통 받고 넘어지지만,
그러한 모습이 하느님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려 해도,
가난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그저 나는 나의 가난 안에서 힘들어 하면서,
가난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유일하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인 듯 합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
    홈페이지 루비 2018.10.22 15:49:42
    받아 드리지 아니하더라도, 그래도 그래도 말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고, 그리 실행을 하고나서 후회를 하지만, 씁쓸하지만 말하는 것이 교만일까? 사마리아인이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고민으로 혼란스럽습니다.
    평화와 선.
  • ?
    홈페이지 잔디 2018.10.22 14:30:28
    아멘!
    고맙습니다~!!!
  • profile image
    홈페이지 풀밭 2018.10.22 12:10:53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29Oct

    연중 30주 월요일-답게 산다는 것.

    오늘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는 ‘답게’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합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도 그리스도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
    Date2018.10.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488
    Read More
  2. No Image 28Oct

    연중 제30주일

    바르티메오는 본래 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그가 눈을 멀게 되었는지는 복음에 나타나지 않지만, 그가 주님께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원래 볼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볼 수 없었고, 그래서 ...
    Date2018.10.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493
    Read More
  3. No Image 28Oct

    연중 제 30 주일-알량한 행복 때문에 죽 써서 개 주지 말 것.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오늘 연중 제 30 주일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비를 구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수 있고 자비를 구하는 인간을 구원해주시는 하느님의 입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
    Date2018.10.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179
    Read More
  4. No Image 28Oct

    2018년 10월 28일 연중 30주일-터키 에페소 기도의 집

    2018년 10월 28일 연중 30주일   오늘 복음은 예리코의 눈먼 거지 소경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온전히 치유되는 과정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리코 소경의 믿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믿음의 표본과 교훈을 줍니다.  믿음...
    Date2018.10.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721
    Read More
  5. No Image 27Oct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사랑과 정의가 정반대의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구약의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으로 잘잘못을 강조하지만, 신약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으로 용서를 강조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가 일치를 이루시기 때문에, 더 나아가 요한 복음...
    Date2018.10.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538
    Read More
  6. No Image 27Oct

    연중 29주 토요일-두려움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완성되는 회개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제가 교만해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오늘 복음의 주님의 말씀을 얼핏 잘못 이해하면 아무리 주님의 말씀이라도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될 수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
    Date2018.10.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355
    Read More
  7. No Image 26Oct

    연중 29주 금요일-자기시대에 갇혀 시대착오적인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오늘 이 말씀은 시기의 변화는 우리가 민감하고 쉽게 알아채지만 시대 또는 세월의 변화는 잘 알지 못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얼마나 민감하게 알아...
    Date2018.10.26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475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675 676 677 678 679 680 681 682 683 684 ... 1325 Next ›
/ 132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