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1499 추천 수 5 댓글 2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오늘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는 답게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합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도 그리스도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그런데 둘 다 자녀답게 살라는 것인데

하나는 사랑받는 자녀답게이고 다른 하나는 빛의 자녀답게입니다.

 

제 생각에 답게 살라는 말은 정체성에 맞게 살라는 것인데

그렇게 사는 것이 보통 쉽지 않고 벅찹니다.

왜냐하면 모든 답게가 보통 더 고귀한 정체성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짐승답게 살라고 하지 않고 오늘 서간처럼

하느님의 자녀나 그리스도인답게 살라는 것이고

적어도 사람답게 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는 사람답게 사는 것도 쉽지 않고 벅찬데

더 고귀한 정체성을 살라는 것이고,

더 고귀高貴하다는 것은 더 높고, 더 귀한 것이기에 벅찰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우리는 이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도 벅차니 더 고귀한 정체성은 포기하던지,

벅차기는 하지만 기회가 주어졌으니 한 번 살아볼 것인지.

 

이는 마치 이와 같은 것이지요.

지금까지 종으로 살아왔는데 종으로 너무도 충직하게 살았다고

주인이 면천을 해줘 양반이 될 수 있지만 평생 종으로 산 사람이

양반으로 사는 것이 힘드니 면천하여 양반되기를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힘들어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인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 우리는 고귀한 정체성을 선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데 어쩌렵니까? 고귀한 정체성을 선택한다면

이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다우려면 하느님처럼 사랑하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은 용서하는 것향기로운 제물로 자기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지금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데

사랑받는 자녀다우려면 그를 용서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용서하기를 포기한다면 고귀한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지금까지 용서치 못했다면 쉽지 않아서인데

쉽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나의 사랑으로 용서하려고 했기 때문이기에

이제는 전과 달리 하느님의 자녀답게 하느님 사랑을 받아 용서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면 성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당신을 넘긴 죄인들을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당신을 제물로 바치신 것처럼

향기로운 희생제물이 되어야 압니다.

그런데 죄인들을 용서하는 것도 힘든데 그 죄인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라니.

 

다음은 빛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어둠의 행실,

어둠 속에서나 하는 짓들은 그만 두고 빛 안에서 머물며, 빛의 갑옷을 입고

빛 안에서 하는 정상적인 행위들만 하는 것입니다.(로마3,12)

 

그런데 우리는 빛의 자녀라는 것이 종종 싫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합니다.

빛으로 나아가면 나의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인데

누가 봐도 칭찬받을 짓을 내가 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고 오히려 보란 듯

할 텐데 드러나면 안 될 짓을 하려고 하기에 어둠 속에 있으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역시 선택해야 합니다.

빛으로 나아가 빛 가운데 있을 것인가, 어둠 속에 있을 것인가?

아무튼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불륜이나 온갖 더러움이나 탐욕은 입에 올리는 일은 없어야 하고

추잡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상스러운 농담은 하지 말라고.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 profile image
    홈페이지 민트 2018.10.29 08:09:16
    세례를 통하여, 형제회를 통하여 주님께서 이 미천한 저를 선택 하셨울 때는 주님의 자녀답게 살라는 아버지의 뜻이 담겨
    있음인데 자녀답게 프란치스칸 답게 머리에서, 가슴으로, 손발로 내려오기 까지가 너무 더뎌서 ..저 자신도 답답합니다.
  • profile image
    홈페이지 이필수다리아 2018.10.29 05:04:19
    감사합니다....^^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30Oct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십니다. 겉으로는 작고 하찮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엄청나게 커 있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자칫 환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에 속아 작은 것은 놓치고 지나가는 경...
    Date2018.10.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497
    Read More
  2. No Image 30Oct

    연중 30주간 화요일-씨앗이 씨앗인 줄 안다면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주님께서는 오늘 왜 이 비유들을 드셨을까? 오늘은 이 비유들을 묵상타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교회를 욕심 부리는 것에 일침을 놓으시기 위해서일까요?...
    Date2018.10.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489
    Read More
  3. No Image 29Oct

    연중 30주 월요일-답게 산다는 것.

    오늘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는 ‘답게’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합니다.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도 그리스도처럼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
    Date2018.10.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1499
    Read More
  4. No Image 28Oct

    연중 제30주일

    바르티메오는 본래 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이유로 그가 눈을 멀게 되었는지는 복음에 나타나지 않지만, 그가 주님께 다시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원래 볼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볼 수 없었고, 그래서 ...
    Date2018.10.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498
    Read More
  5. No Image 28Oct

    연중 제 30 주일-알량한 행복 때문에 죽 써서 개 주지 말 것.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베풀어 주십시오.”   오늘 연중 제 30 주일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자비를 구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수 있고 자비를 구하는 인간을 구원해주시는 하느님의 입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
    Date2018.10.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1 Views1189
    Read More
  6. No Image 28Oct

    2018년 10월 28일 연중 30주일-터키 에페소 기도의 집

    2018년 10월 28일 연중 30주일   오늘 복음은 예리코의 눈먼 거지 소경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부터 온전히 치유되는 과정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리코 소경의 믿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믿음의 표본과 교훈을 줍니다.  믿음...
    Date2018.10.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724
    Read More
  7. No Image 27Oct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사랑과 정의가 정반대의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구약의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으로 잘잘못을 강조하지만, 신약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으로 용서를 강조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가 일치를 이루시기 때문에, 더 나아가 요한 복음...
    Date2018.10.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1 Views541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701 702 703 704 705 706 707 708 709 710 ... 1351 Next ›
/ 1351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