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
주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물으십니다.
그러면서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두 아들 중에 아버지의 뜻을 따른 사람은 맏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맏아들의 행동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제일 좋은 예는 “가겠습니다. 아버지”라고 대답하고, 일하러가는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왜 굳이 가장 좋은 경우의 수를 말씀하시지 않고 대답과 행동이 다른 두 경우를 우리에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건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때문입니다.
자신 스스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나약함을 잘 아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세 아들이 아니라 두 아들의 예를 들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맏아들을 거울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맏아들은 ‘싫습니다’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습니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킨 것일까요?
이 변화의 신비, 변화의 과정만 잘 알고 있다면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라는 에제키엘의 예언이 실현될 것이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과정을 잘 설명해주시면 좋으련만,
명쾌한 답은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다음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매우 내성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소년은 어릴 적부터 꽤나 오랫동안 짝사랑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는 매우 외향적이었습니다.
그 소녀와 함께 있고 싶고, 같이 놀고 싶었던 소년은 자기와는 정말 맞지 않지만 그 소녀에게 다가가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꽤나 시간이 흘러 그 소년은 내성적인 성격을 이겨내고 남들 앞에 서거나 활발하게 여러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을 길렀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 곁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 마음은 나를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변하는 거야라는 광고 문구가 있었는데요.
사랑은 나를 변화시키는 거야가 정답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아들 중 맏아들이 아버지를 더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맏아들이 자기 안에 들려오는 사랑의 목소리을 더 빨리 알아들었습니다.
이는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고, 어디 다른 차원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랑에 민감해져야 하고 이 사랑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자세이고, 우리의 선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모습으로 여느 사람처럼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당신 친히 우리에게 맏아들로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갖고,
귀를 기울이고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주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물으십니다.
그러면서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두 아들 중에 아버지의 뜻을 따른 사람은 맏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맏아들의 행동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제일 좋은 예는 “가겠습니다. 아버지”라고 대답하고, 일하러가는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왜 굳이 가장 좋은 경우의 수를 말씀하시지 않고 대답과 행동이 다른 두 경우를 우리에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건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때문입니다.
자신 스스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나약함을 잘 아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세 아들이 아니라 두 아들의 예를 들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맏아들을 거울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맏아들은 ‘싫습니다’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습니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킨 것일까요?
이 변화의 신비, 변화의 과정만 잘 알고 있다면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라는 에제키엘의 예언이 실현될 것이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과정을 잘 설명해주시면 좋으련만,
명쾌한 답은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다음의 결론을 얻었습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원래 매우 내성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소년은 어릴 적부터 꽤나 오랫동안 짝사랑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는 매우 외향적이었습니다.
그 소녀와 함께 있고 싶고, 같이 놀고 싶었던 소년은 자기와는 정말 맞지 않지만 그 소녀에게 다가가려고 무척 노력했습니다.
꽤나 시간이 흘러 그 소년은 내성적인 성격을 이겨내고 남들 앞에 서거나 활발하게 여러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능력을 길렀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 곁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그 마음은 나를 변화시킵니다.
사랑은 변하는 거야라는 광고 문구가 있었는데요.
사랑은 나를 변화시키는 거야가 정답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아들 중 맏아들이 아버지를 더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맏아들이 자기 안에 들려오는 사랑의 목소리을 더 빨리 알아들었습니다.
이는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고, 어디 다른 차원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사랑에 민감해져야 하고 이 사랑의 목소리에 응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자세이고, 우리의 선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모습으로 여느 사람처럼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습니다.
당신 친히 우리에게 맏아들로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갖고,
귀를 기울이고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것에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