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주
소화 자매 수녀님들께 강의를 하기 위해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이 수녀회는 우리 프란치스코 영성을 따른 방인 수도회인데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성녀 소화 데레사의 정신도 따릅니다.
성녀 데레사와 성 프란치스코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두 분의 닮은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
이 수녀회를 창설한 김 준호 선생님도 일찍이 두 분의 공통점을 보시고
두 분을 같이 받드는 수도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이름에 프란치스코가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서 프란치스코의 소화 자매 수녀회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이 두 분의 닮은 점,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작음과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둘을 하나로 줄이면 작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작은 것으로 치면 두 분만 작겠습니까?
우리의 능력도 보잘 것 없습니다.
우리의 덕도 보잘 것 없습니다.
우리의 선이란 아예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작습니다.
그럼에도 두 분의 공통점을 작은 사랑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작기로 치면
우리가 두 분 보다 더 작지만 우리는 큰 것을 지향하고
크기로 치면
두 분이 더 크지만 두 분은 작은 것을 지향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 있기에 큰 것을 지향하였지만
두 분은 하느님 앞에 있었기에 작은 것을 지향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듯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로 있었고
오늘 이사야의 말씀처럼 갓난아기의 작은 사랑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갓난아기의 작은 사랑입니까?
그것은 하느님 사랑을 무엇보다 갈망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완전히 의존하는 사랑입니다.
종종 우리는 내가 사랑하겠다고 깝죽댑니다.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은 하느님 사랑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두 분의 사랑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갈망입니다.
갓난아기에게 어미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절대로 필요한 존재가 되어
갓난아기가 어미의 젖가슴을 파고들 듯
하느님 사랑을 파고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에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하느님 사랑이 없다면 부지하지도 못하고
하느님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두 분은 하느님의 사랑이 그들의 능력이 되어
하느님의 사랑으로 무엇이건 한 분들입니다.
자기 능력으로 무엇을 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무엇을 하는 것,
이것이 두 성인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평양의 평화 봉사소 완공과 축복식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두 분 성인은 저를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이것을 사랑이 아니라 일로서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라 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은 아닌지?
데레사 성녀는 옷핀 하나를 사랑으로 줍고
앓는 중에도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는 작은 사랑을 하셨는데
나는 너무 큰 것을 지향하는 것은 아닌지?
소화 자매 수녀님들께 강의를 하기 위해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이 수녀회는 우리 프란치스코 영성을 따른 방인 수도회인데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성녀 소화 데레사의 정신도 따릅니다.
성녀 데레사와 성 프란치스코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두 분의 닮은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데
이 수녀회를 창설한 김 준호 선생님도 일찍이 두 분의 공통점을 보시고
두 분을 같이 받드는 수도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 이름에 프란치스코가 들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서 프란치스코의 소화 자매 수녀회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이 두 분의 닮은 점,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작음과 사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둘을 하나로 줄이면 작은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작은 것으로 치면 두 분만 작겠습니까?
우리의 능력도 보잘 것 없습니다.
우리의 덕도 보잘 것 없습니다.
우리의 선이란 아예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도 작습니다.
그럼에도 두 분의 공통점을 작은 사랑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작기로 치면
우리가 두 분 보다 더 작지만 우리는 큰 것을 지향하고
크기로 치면
두 분이 더 크지만 두 분은 작은 것을 지향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 있기에 큰 것을 지향하였지만
두 분은 하느님 앞에 있었기에 작은 것을 지향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듯 하느님 앞에서 어린이로 있었고
오늘 이사야의 말씀처럼 갓난아기의 작은 사랑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갓난아기의 작은 사랑입니까?
그것은 하느님 사랑을 무엇보다 갈망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완전히 의존하는 사랑입니다.
종종 우리는 내가 사랑하겠다고 깝죽댑니다.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은 하느님 사랑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두 분의 사랑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갈망입니다.
갓난아기에게 어미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절대로 필요한 존재가 되어
갓난아기가 어미의 젖가슴을 파고들 듯
하느님 사랑을 파고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사랑에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하느님 사랑이 없다면 부지하지도 못하고
하느님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두 분은 하느님의 사랑이 그들의 능력이 되어
하느님의 사랑으로 무엇이건 한 분들입니다.
자기 능력으로 무엇을 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무엇을 하는 것,
이것이 두 성인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평양의 평화 봉사소 완공과 축복식이라는 큰일을 앞두고
두 분 성인은 저를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이것을 사랑이 아니라 일로서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라 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은 아닌지?
데레사 성녀는 옷핀 하나를 사랑으로 줍고
앓는 중에도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는 작은 사랑을 하셨는데
나는 너무 큰 것을 지향하는 것은 아닌지?
평화봉사소 완공과 축복식이 하느님 사랑으로 잘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