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오늘 복음을 읽으며 탁 떠오른 단어가 <조응照應>입니다.
사전적인 정의는 이렇습니다.
-둘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서로 비추어 꼭 맞게 대응함.
-원인에 따라 결과가 나타남.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과 예수님의 조응이 참 아름답고,
그래서 대림 시기 첫 번째 얘기로 오늘 얘기를 꼽은 것 같습니다.
우리도 백인대장과 같아야 한다고 본보기로 제시하는 거겠지요.
백인대장은 주님께서 구원자 주님으로 와 주시기를 청하는 이의 모범입니다.
백인대장은 우선 청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청하는 사람에게는
-간절함
-겸손함
-믿음
-사랑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건 남을 위해서건 바라는 것이 간절하지 않으면 청치 않지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밥으로 치면
한 대여섯 끼는 굶었을 때의 상태입니다.
제가 무전순례를 처음 할 때 밥을 빌어먹어야 하는데
한두 끼 굶어가지고는 밥 주십사 청하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자존심이랄까 부끄럼이랄까 이런 것이 있기 때문인데 배고프고 먹고픔이
극에 달해 간절함이 자존심과 부끄러움을 내려놓게 할 때 청하는 겁니다.
두 번째로 백부장은 겸손하기에 청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결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음을 볼 때
백부장이 참으로 겸손하기에 청한다는 것은 긴 말이 필요 없지만
점령군의 장교가 점령지의 사람에게 겸손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인간적인 관계를 넘어서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런 겸손이라는 면에서 우리의 모범입니다.
그는 놀랍게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며 청합니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백부장은 프란치스코가 권고 19에서 얘기하는 겸손의 경지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겸손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백부장은 믿음이 있기에 청합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믿음이 있기에 청한다는 것도 너무 자명하여 설명이 필요 없지만
그 믿음이 주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뿐 아니라
사랑을 믿은 거리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청할 때 그가 부자이기는 하지만
노랭이라고 생각하면 청하지 않잖아요?
마지막으로 백부장은 대단한 사랑의 소유자이기에 청합니다.
자기 종을 엄청 사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종을 사랑하는
자기의 인생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하며 사는 삶을 돈을 많이 벌거나
권세를 부리는 삶보다 가치 있게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백부장의 요청에 주님께서는 감탄하시며 흔쾌히 OK하시고
직접 왕림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백부장과 같이 청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오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 교회의 전례는 대림 시기의 첫날
이 얘기를 배치한 것을 감사하며 배우는 우리이고 오늘입니다.